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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09 17:51 수정 : 2005.10.09 19:51

김병수 논설위원

아침햇발

기자들은 잘못을 비판하는 데 익숙하지만, 누굴 변호하는 건 몹시 꺼린다. 그 대상이 공직자라면 거의 금기에 가깝다. 눈총받더라도 한번 일탈해 보려 한다.

월간 〈신동아〉를 시작으로 〈동아일보〉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에서 이정우 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경북대 교수)이 재임 때 정책기획위원회가 발주한 3천만원짜리 연구용역을 스스로 수주했다는 보도가 지난 9월에 일제히 나왔다. 신동아는 “공직윤리에 어긋나는 비상식적인 용역 수의계약을 했다는 논란이 제기됐다”고 했다. 조선과 문화는 사설을 통해서도 질타했다. 이 전 위원장 쪽 해명이 일부 실리기는 했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부도덕한 공직자로 각인되기에 충분했다. 한 대학교수는 보도를 보고 칼럼을 통해 “이런 정도의 공직윤리의식을 가진 자들이 그간 최고 상층부에서 국정을 논단했다는 게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하기도 했다.

일주일여 뒤 〈청와대 브리핑〉에 이 전 위원장의 글이 올랐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제목으로 쓰여진 그의 해명은 이랬다. (객관적 전달을 위해 요약은 하되 이 전 위원장이 설명하는 형식으로 정리했다.)

“2003년 노사정 사회협약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게 일어났다. 그해 11월 이종오 당시 정책기획위원장은 노사와 학계가 참여하는 선진국 노사정 협의모델 연구를 기획해 네덜란드, 스웨덴, 독일을 방문조사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이 확정 단계에 있던 이듬해 1월 정책기획위원장이 이정우로 바뀌었다. 계획을 승계하는 게 당연했다. 정책기획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3개국 방문 일정도 이미 잡혀 있었다. 과제는 계획대로 진행됐고, 연말에 보고서가 작성됐다. 외국출장으로 처리할 수 있었지만, 조사에 참여한 외부 인사들에게 예산으로 경비를 지급할 수 있게 연구용역과제로 처리한 것이다.

정책기획위원장은 비상임으로 봉급을 받지 않는 직위이며, 조사연구 책임자로 연구과제를 맡는 것은 합법적이고 전례도 있다. 총 3천만원 중 2570만원은 외국 실태조사 경비, 인쇄비, 회의비로, 430만원은 순수 연구비로 지출됐다. 연구비 중 162만원은 본인에게 책임 집필료로 지급됐다.”

그의 앞뒤 과정 설명이 거짓이 아니라면, 이를 두고 ‘본인이 발주한 연구용역을 수주한 부도덕한 공직자’로 재단할 일이 아니다. 적어도 내 개인의 기자 경험과 상식으로는 그렇다. 이 전 위원장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이 진실게임을 굳이 들추는 건 세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개인의 명예는 보호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전직 고위 공직자라 해도 마찬가지다. 둘째는, 보도 내용이 왜곡된 것이었다면 언론의 관행을 고치는 계기로 삼자는 뜻에서다. 잘못된 언론 보도는 큰 파장을 낳지만, 언론은 잘못을 바로잡는 데 대단히 인색하다. 고쳐야 할 우월적 관행이다. 행여 의도적인 흠집내기였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셋째는 이 전 위원장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그는 이 정부 안에서 분배정책과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에 신경쓰던 대표적 인물이다. 보수언론과 기득권층에겐 탐탁잖은 존재였다. 정책을 다룬 핵심 인물의 도덕성에 흠집이 나면 정책 추동력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가적으로도 가볍게 볼 수 없는 문제다.

이 전 위원장은 “개인의 명예를 가볍게 본 일부 언론의 횡포”라며, 유사한 사건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정정보도 요청 등 모든 조처를 하겠다고 했다.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려 한다.


김병수 논설위원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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