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10 18:22
수정 : 2005.10.1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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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준 성균관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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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성장이냐 분배냐의 문제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 국민들도 이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대다수의 여론조사 결과는 확실하게 보여준다. 조사에 따른 구체적인 수치의 차이는 있지만 국민의 과반수 이상은 우리 경제가 성장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국민의 과반수 이상은 우리 경제의 일차적인 문제가 성장을 못하는 것보다는 양극화를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나 빈부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우리 국민은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성장, 빈부 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성장, 고용의 확대를 동반하는 성장을 말하고, 바란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분배와 관련한 정책 의제가 구체화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과도한 분배와 저성장에 대한 경고이며, 그러한 논의가 주로 관련 전문가나 관료들로부터 제기된다는 점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에 있었던 두 개의 정책 의제가 바로 그랬다. 그 중 하나는 해마다 되풀이되는 나라 살림살이에 대한 논란이며, 다른 하나는 지난달 정부가 제시한 사회안전망 개혁 방안과 관련한 시비다.
우리나라 헌법은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이 회계년도 개시 90일 전까지는 국회에 제출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9월 중순쯤이면 다음해 나라 살림살이의 구체적인 내역이 우리에게 전해진다. 이때쯤 되면 단골로 등장하는 쟁점이 바로 성장이냐 분배냐의 문제이다. 특히 사회복지 분야의 예산 증가율이 흔히 도마에 오른다. 그것이 전체 예산 증가율보다 높게 편성되었다는 점에 근거해서 성장 잠재력의 훼손이나 저성장을 경고하는 논의들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제기된다.
하지만 몇 년째 때만 되면 되풀이되는 이런 논의는 정직하지도 성실하지도 않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도 사회복지 예산의 증가율은 정부 예산 증가율의 1.4배 수준이었다. 권위주의 정부에서의 분배는 성장을 저해하지 않고, 민주주의 정부에서의 그것은 성장을 저해한다면 도대체 그런 분배와 성장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예산의 증가를 불가피하게 요구할 만큼 절실한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예산안에 뻥뻥 뚫려있는 구멍에 대한 분석도 생략된 채 진행되는 논의의 진정성도 매우 의심스럽다.
지난달 정부는 ‘희망한국 21’이라는 이름의 사회안전망 개혁 방안을 마련했다. 그 뼈대는 2009년까지 약 8조6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빈곤층 지원 등 22개 복지 대책을 추진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서 국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하고 빈곤 위험 계층의 빈곤 예방과 탈출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의 대체적인 평가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것이지만, 내가 보기엔 필요한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수립이 빠져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이다. 이러한 결과는 대개 어떤 정책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서 실행에 대한 합의 도출에 실패했거나, 정책안은 마련했지만 실행할 의사는 별로 없을 때 나타난다.
어떤 이유이든 종합적인 예산 계획이 빠져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정책의 실현 가능성이 별로 크지 않음을 의미한다. 복지 예산이 이미 적정선을 넘었다는 생각, 분배는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믿음이 예산부처나 경제부처에 만연해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래서 용의 머리로 시작한 사회복지 정책이 뱀의 꼬리로 흐지부지 끝나게 되는 경우도 적잖게 보아왔다. 물론 뜨거운 가슴보다는 차가운 머리가 경제 예산 관료가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사회복지 정책에 대한 차가운 머리의 덕목이 세입기반의 위축을 초래하는 정치판의 레토릭이나 과세 체계를 유린하는 금융자본의 활약에 대해, 또한 국가 채무 증대의 일등 공신인 공적자금을 부실하게 관리하고 비효율적으로 운영한 것에 대해서도 같은 정도로 사용되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들의 생각이나 믿음, 거기에 기초한 차가운 머리의 덕목 또한 정직하지도, 성실하지도 않아 보인다.
홍경준/성균관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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