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10 18:31
수정 : 2005.10.10 18:31
유레카
18세기 독일에서 시작된 낭만주의는 이국적이고 환상적이며 자연적인 어떤 걸 특징으로 한다고 흔히 말한다. 우리가 보통 쓰는 ‘낭만적’이라는 말도 이런 뜻을 담고 있다.
이사야 벌린의 책 <낭만주의의 뿌리>를 보면, 낭만주의를 촉발시킨 인물은 철학자 칸트의 친구인 요한 게오르크 하만이다. 방탕한 생활에 빠져 있던 그는 구약성경을 읽다가 종교적 체험을 한 뒤 계몽주의에 반대하는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글은 헤르더, 괴테, 키에르케고르 등 여러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낭만주의가 다양한 모습으로 퍼져나가는 시발점 구실을 했다.
낭만주의라는 말은 아주 익숙하지만 막상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은, 낭만주의가 근대적이고 흥미로우며 고전주의는 낡고 진부하다고 말했다. 같은 시대 인물인 독일의 문호 괴테는 낭만주의는 병이자 한 무리의 미친 시인과 가톨릭 반동주의자들의 나약함, 병약함, 요란한 함성이라고 했다. 비평가 미들턴 머리는 루소 이후의 모든 위대한 작가는 낭만주의적이었다고 한 반면, 마르크스주의 비평가 죄르지 루카치는 낭만주의에서는 어떤 위대한 작가도 탄생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낭만주의에 공통점은 있기 마련이다. 벌린이 지적하는 공통점은, 사물의 불변하는 구조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끊임없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인간 의지를 최우선에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낭만주의를 길게 늘어놓은 건, 복원 직후 가본 청계천 때문이다. 숲 사이로 졸졸 흐르는 맑은 물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돌로 된 강 바닥과 시멘트 벽, 잘 닦인 인공 둔치, 그 사이에서 안쓰러워 보이는 물풀들이라니. 자연적이거나 환상적이거나 정서적인 측면을 자극한다는 뜻에서 낭만이라곤 없다. 그나마 낭만주의의 핵심 개념인 ‘끊임없는 변화’를 상징하는 ‘흐르는 물’을 찾은 게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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