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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1 18:43 수정 : 2005.10.11 18:48

임범 문화생활부장

아침햇발

전어회, 성게알, 삼치회, 고등어구이, 새우구이 ….

지난주말 부산국제영화제에 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가을 전어철에 부산에서 전어회를 먹지 않을 수 없다. 어디 전어뿐이랴. “성게알은 지금이 막장입니다. 좀 있으면 성게 안에 알이 사라지고 안장고라는 게 나오지예. 삼치회는 살짝 얼어 있을 때 먹는 게 맛있습니다. 녹기 전에 자세요.” 부산 남포동 ‘해물나라’는, 2년 전까지 바로 앞 골목에서 포장마차를 하던 아주머니가 남포동 포장마차촌이 철거되면서 새로 들어선 건물에 점포를 얻어 차린 식당이다. 마른 체형에 부산 사투리가 정겨운 아주머니는 신선한 해산물을 포장마차할 때 그랬던 것처럼 먹을 만큼 조금씩 내놓는다. 값도 싸다.

2~3년 전부터 부산영화제의 중심이 남포동에서 해운대로 옮겨가 지금은 중요한 행사가 모두 해운대에서 치러진다. 해운대는 고급 휴양지로 손색이 없다. 올해 가 보니 해변 백사장 정리 공사가 끝나 칸영화제가 열리는 프랑스 칸의 해변보다 못할 게 없었다. 그래도 오래 전부터 부산영화제를 관람해 온 이라면 남포동과 인근 자갈치 시장의 소박함과 왁자지껄함에 대한 향수가 있을 거다. 특히 나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3년 동안 부산영화제에 취재차 와서는 이 아주머니의 포장마차로 밤마다 출근하다시피 했다. 이 곳의 회와 구이, 탕은 전날의 숙취를 씻어주면서 새 술을 반갑게 불러들였다. 그런데 그 뒤로 해운대에 갇혀 가질 못했다.

3년 만에, 가게도 바뀐 아주머니를 찾아낼 수 있었던 연유는 이렇다. 지난해 <씨네21>이 만드는 ‘부산영화제 데일리’(영화제 기간에 내는 일간지)의 ‘부산영화제의 추억’이라는 난에 이 포장마차에서 술먹던 이야기를 썼다. 주인 아주머니를 ‘그 여인’으로 표현하면서 멜로장르로 위장한, 속에는 술자리 이야기만 있는 잡문(▶아래 박스 안)이었다. 그걸 아주머니가 보리라곤 상상도 안 했는데 서울로 올라온 뒤 전자우편 한 통을 받았다. 아주머니 가게의 단골 손님이 아주머니 부탁을 받고 보낸 그 쪽지엔 아주머니가 고마워한다는 말과 함께 포장마차가 건물 안으로 옮겼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한결같음을 방해하는 건 대체로 성장이다. 성장해서 태도가 바뀌기도 하고 성장하기 위한 욕심으로 미리 변하기도 한다. 식당이 커지면 한결같던 맛이 떨어지는 경우를 자주 봐 왔다. 포장마차보다는 규모가 커졌음에도 이 집은 음식 맛뿐 아니라 사람 반가워하는 아주머니의 모습까지 한결같았다. 포장마차 때부터 손님 맞을 때 유달리 환하게 웃는 아주머니의 표정은 상술로 보이지 않았다. 그 표정이 음식에 배어서 술맛을 돋우는 게 아닐까.

열돌 맞은 부산국제영화제야말로 크게 성장했다. 거기서 제일 먼저 한결같게 다가오는 건 김동호 집행위원장의, 술 마실 때 표정이다. 영화제가 다가오면 기자들을 불러 식사를 하는데 김 위원장이 워낙 술을 자주 많이 해서 어떨 땐 영화제 직원이 “오늘은 술을 좀 자제해 달라”고 기자에게 미리 부탁한다. 그래봤자 소용없다. 김 위원장이 “그래도 우리가 …(‘모처럼 만났는데’는 항상 생략한다)”라며 먼저 잔을 돌린다. 거부하기 힘든 매력적인 권주다. “그래도 우리가 …”하며 지긋이 웃는 그 표정. 이게 단지 술에 그치지 않는 것이, 김 위원장은 매해마다 부산지역 언론과 관공서, 각계 인사들과 이런 자리를 만든다. 다른 영화제들이 지방자치단제, 지역언론과 자주 불협화음을 내 왔지만 부산영화제는 달랐음을 상기하면, 김 위원장의 한결같은 표정은 오늘의 부산영화제가 있게 한 공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식당이든 영화제든 결국은 사람 장사 아닐까. 규모가 커져도 친절하고 정겨운 모습을 한결같이 가져가기를 …

임범 문화생활부장 .isman@hani.co.kr


나에게 영화제는 ‘간과의 전쟁’이다. 맛있는 집 많고, 아는 사람들 북적 대는 부산국제영화제는 더 그렇다(어제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는 부산영화제가 ‘박카스의 축제’라고 했다). 영화는 걸러도 술은 그러지 못하는 이 화상! 서울에서 맨날 먹는 술 부산와서 먹는다고 뭐가 다르다고…. 그런데 다르다. 어머니 고향이 부산이어서인지 부산 음식이 맛있기도 하지만, 부산에만 오면 내 간을 알콜에 담가놓게 만든 여인이 있다. 아니, 있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2000년 가을이었다. 그해 부산영화제는 지금보다 추웠던 걸로 기억한다. 남포동 PIFF 광장 뒷골목을 로얄호텔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서울곰탕집 앞에 이르렀을 때 그 맞은 편에 그녀가 서 있었다. 밤 10시쯤. 속이 출출해지는 술시(酒時), 약간의 공복이 찬바람 맞아 한기로 변하고 있었다. 서있는 그녀를 마주보고 앉았다. “여기 따뜻한 쪽으로 오실랍니까? 아니면 의자 밑에 불 좀 넣어드릴까요?” 그녀는 내가 앉은 의자 밑으로 화덕을 넣어주었다. “뭘 좀 드릴까예? 오늘은 고등어가 좋습니다.”

왜 말이 없는데 마차라고 부르는 걸까. 서부영화에서 따온 건가. 포장마차는 이 정도 추울 때 술 맛을 살리는 데에 더 없이 적격이지만 나는 거기서 오래 술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거기서 술 마시면 이야기의 밀도가 높아진다. 어느 순간까지는 그게 좋다. 그 순간이 넘으면 피곤해진다. 술 취해서 말 많이 하기 시작하면 십중팔구 누군가 한명이 웅변한다. 술을 즐기려면 이건 피해야한다. 오밀조밀 붙어 앉는 포장마차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숨 고를 틈을 잘 안 준다.

그녀의 포장마차는 달랐다. 안주 맛이 어떻게 그리 좋은지. 그녀는 고등어에 더해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생선들을 굽거나 튀겨서 내주었다. 그러면 안주 먹느라, 그 맛과 술이 어우러지는 미각미학적 쾌감을 음미하느라 열변을 토할 여지가 생기질 않았다. 자리가 좁다는 것도 여기선 장점이 됐다. 그 포장마차는 로얄호텔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포장마차 행렬의 맨 앞에 있었다. 영화제 기간 동안 아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그 앞을 지나간다. 반가운 이들도 있지만 피하고 싶은 이들도 있게 마련. 피하고 싶은 이들은 앉힐 자리가 없어서 좋고, 반가운 이들(특히 언니들)은 더 좁혀 앉으니까 좋았다.

그녀는 처음 나를 보고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머리 숱이 적은 내가 좋아할 호칭이 아니지만 머리 숱 적은 지도 오래 돼서 무뎌졌다. 중년에 많이 말랐지만 그녀의 얼굴은 예쁜 쪽이었다. 부산 사투리가 심했는데 그 억양의 높낮이 사이에서 친절함이 묻어나왔다. 묘사는 여기서 끝. 술집 주인에게 사심이 생기면 술 맛이 변질된다. 그해 영화제 기간 내내 그 포장마차로 출근했고, 술 맛은 변질되지 않았다. 서울 올라가기 이틀 전에 “내일 여기서 거하게 한잔 하고 올라가렵니다”라고 했고 다음 날 그녀가 준비한 각종 생선 구이와 탕의 향연은 내가 먹은 안주 중에 최고였다.

2001년에 왔을 땐 “사장님 안 오시나 기다렸는데”라고 했고, 2002년 영화제 중반쯤에 왔을 땐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예”라며 반겼다(호칭은 여전히 ‘사장님’이었다). 2003년엔 다른 일로 오질 못했고 올해는 해운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포동에 비하면 해운대는 정감이 가질 않는다. 아담한 술집이 안 보이고 포장마차 촌까지도 규격화됐다. 예전엔 영화제기간 중 공식 파티에 잘 가질 않았는데 올해는 거기 말고 갈 곳을 찾지 못해 여러번 갔다. 파티에선 마음 맞는 사람끼리 오붓하게 술먹기 힘들다. 그래서 술이 다음날까지 얹힌다. 내일 서울 가야 하는데 그녀를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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