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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2 21:08 수정 : 2005.10.12 21:08

김효순 편집인

김효순칼럼

미국 현대사에서 최대 미스터리의 하나였던 워터게이트 사건의 ‘디프 스로트’라 불린 익명의 제보자가 33년 만에 드러나 떠들썩하게 보도된 지도 넉 달이 넘었다. 1972년 6월 민주당 본부가 있던 워터게이트 빌딩에 괴한들이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다 붙잡힌 사건을 추적하던 〈워싱턴 포스트〉의 풋내기 기자 2명이 벽에 부닥쳐 헤매고 있을 때마다 은밀한 방식으로 길 안내역을 해주던 제보자는 당시 연방수사국의 2인자였던 윌리엄 마크 펠트였다. 이제 92살의 고령인 펠트는 조직의 비밀엄수 의무를 위반한 이유에 대해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의 측근들이 나치처럼 발호해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한 행동이라고 자신을 합리화했다. 반면, 그를 배신자로 보는 사람들은 48년 동안 연방수사국장에 재임하며 전횡을 한 에드거 후버 국장의 사후 닉슨이 후임자를 외부에서 낙하산으로 임명하자, 반감을 품고 복수에 나선 것이라고 비난했다.

어느 쪽이 진실에 더 가까운지는 알 수 없지만, 펠트 자신이 수사국 고위간부로 있던 시절 요원들에게 불법 가택 침입 등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은 흥미롭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충격 속에 프랭크 처치 상원의원이 이끄는 특위가 정보기관의 불법 활동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나서자 펠트는 공개 성명을 통해 사회의 ‘더욱 큰 선’을 위해 가택 침입 등을 지시했으며 개별 요원들이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70년대 미국의 반체제 단체인 ‘웨더언더그라운드’ 조직원들의 친척이나 친구들의 집을 영장 없이 뒤지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돼 80년 11월 배심의 유죄 평결을 받았다. 법조항으로 보면 최고 징역 10년형에 처할 수 있는 죄였지만, 결국 5천달러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닉슨은 불명예 퇴임 이후 처음으로 변호인 쪽 증인으로 법정에 나와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래 역대 대통령들이 스파이 활동을 조사하기 위한 침투 공작을 승인했다고 두둔하고 공판비용 모금운동에도 참여를 했다. 닉슨이 생전에 펠트가 자신을 낙마시킨 디프 스로트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도 궁금하다. 법적 공방은 강경보수파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81년 4월 보수세력들의 건의를 받아 사면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지금 이 땅에서도 정보기관의 과거 불법 행위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이었던 김은성씨가 불법 도청을 지시한 혐의로 다시 구속되면서 앞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어디까지 확대될지가 관심거리다. 우리 사회에 남아 있던 성역들을 하나씩 들어내는 긍정적 변화로 생각된다. 그가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동면상태에 있던 말을 되살려낸 것을 보면 역시 구시대에 속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는 ‘국가통치권’ 보존 차원에서 관행적으로 도청했을 뿐 정치사찰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어느 사회에서건 체제 유지의 핵심들은 반체제 세력들을 적으로 간주해 감시를 하고 제재를 가한다. 차이가 있다면 얼마나 합리적으로 법적 기준을 마련해 그 범위를 일탈하지 않고 적용하느냐일 것이다. 국가 안보나 테러 위협에 대한 대처는 사회적 합의의 폭에 따라 정보기관의 공작이 한정된 조건 아래서 용인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의 불법 도청 대상은 여야 정치인, 언론인, 경제인 등 체제 안의 사람들로 드러났다. 이들을 적으로 삼아 불법 공작을 하면서 국가 통치권 보존 차원 운운하는 것은 너무나 낯간지러운 얘기다.

김효순 편집인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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