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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병기 한국수력원자력 영광교육훈련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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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나라는 에너지 대외의존도가 높고, 에너지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기후변화협약을 이행해야 한다. 나를 비롯해 원자력계에서는 그 대안이 원자력 발전이라고 본다. 그러나 일반국민은 원자력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원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은 경제학적으로 보면, 비용과 편익 배분의 불균형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 현상이다. 카너만과 트버스키에게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안겨준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은 이런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유용한 이론이다. 이 이론은 사람들이 위험이 수반되는 의사결정을 할 때, 전통적인 ‘기대효용 이론’의 모델과는 달리 손익의 비중과 확률을 다르게 잡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 경제학자들은 주식 투자자가 1달러를 잃을 때 느끼는 고통이 1달러를 벌 때 느끼는 기쁨의 2배에 이른다고 본다. 원자력 관련시설 지역주민의 행동도 이 이론에 부합한다. 시설이 들어선 뒤 예기치 못한 환경영향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것에 대해 해당 지역주민이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원자력산업은 이런 경제학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심리적 요인 등의 다양한 변수들이 내재하여 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가 더욱 어렵다. 원자력계에서 제시하는 확률적인 이론이 경험적으로 의미가 있고 검증이 가능하더라도, 일반 국민을 설득하기가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의 확률론적 안전성을 설명하면서 한국 표준형 원전의 노심손상빈도가 10만년에 1회 미만이라는 설계 기본요건을 아무리 설명한다고 해도 국민이 이를 피부로 느끼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 확률이 현상의 일반적인 경향을 말해 줄 수는 있지만 모든 예외적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과학자나 기술자들은 공중이 생각하는 위험의 정도가 실제 위험의 정도보다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일반인들의 재해에 대한 규정 자체가 인간의 가치와 선호에 의하여 정립된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우리 사회 전반에 민주적 상향식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다. 따라서 원자력산업이 아무리 과학적으로 안전하고 기술력이 우월하다 할지라도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것은 명백하다. 독일 의회가 시민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2021년까지 원전 19기를 모두 폐쇄하는 내용의 원전폐쇄 법안을 승인한 사례는 국민적 합의 없이는 원자력발전 정책을 실천해 나가기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 경합관계에 있는 패러다임이 서로 부딪칠 때 각각의 패러다임의 지지자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증거를 보기 때문에 패러다임끼리 갈등이 발생한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려면 패러다임을 전환해 새롭고 조화된 패러다임을 구현하여야 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패러다임을 동일한 잣대로 잴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들이 상호 배타적이지 않고 상호 보완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 문제 해결의 열쇠로 작용할 수 있다. 저명한 물리학자인 보어는 “진리에는 사소한 진리와 위대한 진리가 있다. 사소한 진리의 반대는 당연히 거짓이다. 그러나 위대한 진리의 반대는 역시 진리이다”라고 갈파하였다. 원자력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원자력산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과학기술만을 내세워서 잠재우기에는 어려우므로 원자력계는 상대론적 태도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류병기/한국수력원자력 영광교육훈련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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