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17 18:18
수정 : 2005.10.1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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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중 동국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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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강정구 교수에 대한 형사처벌 문제를 둘러싸고 파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6·25는 통일전쟁’이라는 강 교수의 주장이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찬양·고무) 및 동조 제5항(이적표현물 제작 및 배포) 위반 소지가 있어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서를 경찰이 검찰에 제출하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법무장관의 지휘권 발동과 검찰총장의 사표 제출에 이은 청와대의 강경 대응으로 법적·정치적 사안을 넘어서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우리 사회 이념 갈등의 한계적 상황을 극명하게 대변하는 이번 사건의 1차적 열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이 쥐고 있다. 일단 수사에 착수하면, 실정법 수준에서 위법성 여부만을 판단하는 경찰과 달리, 검찰은 강 교수 사안에 관련된 실정법상 해석·적용의 바탕이 되는 심도 있는 법리적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강 교수의 형사처벌 여부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우리 사회의 최상위 규범인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하위법인 국가보안법이 어떤 근거로 제한할 수 있느냐이다. 현행 국가보안법의 실증적 해석·적용에 있어서 학문과 표현에 관련된 헌법상 자유의 제한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수호’라는 대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 결국 문제는 학문의 자유와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상호 관계가 헌법과 국가보안법 사이에서 어떠한 구조로 자리매김하느냐에 대한 논의로 귀착된다.
이러한 논의는 필연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고, 이는 ‘근대정신’이라는 거시적 틀 속에서 접근해야 한다. 근대정신은 합리와 이성 및 계몽을 어우르는 개념으로 인권과 권력분립에 기초한 근대 헌법 정신의 기틀이 되었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핵심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모태가 되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근간 중의 하나가 학문과 표현의 자유이다. 학문과 표현의 자유는 학문 연구의 자유와 연구 결과에 대한 표현의 자유라는 두 가지 형태로 실현된다. 대학 내에서 무엇을 연구하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학자 개인의 선택과 양식에 달려 있는 문제이며, 당대의 특정 정파나 그룹의 이해관계에 의해서 연구 결과가 재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학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학자 개인에게 주어지는 면책특권은 학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제한적인 권한을 부여받아서가 아니라, 학문과 표현의 자유 자체가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자 전제정치를 청산하고 혁명을 통해서 인류가 얻어낸 근대정신의 에센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유정신은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남을 단죄하지 않으며, 나아가 나와 다른 생각을 포용할 때 사회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조화를 이룬다는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확립된 것이다. 학문 세계에서 진리라고 생각되는 모든 명제에까지도 무제한적 비판이 가해질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강 교수의 주장이 우리 사회에 많은 논란과 파문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학자로서 그의 주장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본질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뒤흔든 발언인지는, 역설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통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볼 문제이다.
‘반국가단체’인 알제리해방전선에 군자금 전달까지 시도한 사르트르를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프랑스 정부 안에서 개진되었을 때, 드골 당시 대통령이 “놔둬. 그도 프랑스야”라는 유명한 말로 논란을 잠재운 일화가 있다. 강 교수에 대한 국가보안법의 적용에 있어서 검찰의 신중한 판단을 요구한다.
이용중/동국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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