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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7 18:21 수정 : 2005.10.17 19:22

김갑수 문화평론가

세상읽기

야만의 언어가 있다. 모든 이성적 사유를 한방에 끊어버리고 오로지 발가벗은 힘의 논리만이 작동되게 만드는 표현. 가령 현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두고 “너 수구꼴통이지!” 하고 되받아 버리면 대화는 끝이다. 이럴 때 상대방의 반응도 자동응답기처럼 되돌아온다. “그럼 너는 뇌(노)사모지!”

소위 ‘강정구 교수 발언’을 두고 또다시 야만의 언어가 춤을 춘다. 그 극치가 이런 것.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평양 가서 살아라!” 도대체 이게 말인가? 그런데 그것도 ‘말’이라고 일간지 사설에 버젓이 실린다. 정확히 인용하면 이렇다. ‘남한이 공산체제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해 애통해 하는 강 교수의 진심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학문의 자유라는 장막 뒤에서 이 체제에 악담을 퍼붓는 강 교수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왜 평양으로 가서 살지 않는 것인가.’

강 교수가 무엇을 애통해 했다는 것인지 정확한 내용을 찾아보니 그의 비교사회학 논문의 각주에 나오는 짧은 인용이다. 해방공간에서 한반도 내부의 사회상황은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는 객관적인 사실. 그 한 예증으로 ‘1946년 미 군정청 여론조사에서 공산·사회주의 지지는 77%, 자본주의 지지는 14%였다’는 사례 보고였다.

한나라당 발표를 보니 강 교수의 아들이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모양이다. 한번 상식선에서 생각해 보자. 신문사설이 궁금해 하는 ‘강 교수의 진심’, ‘강 교수의 정체’를 정말 모르겠는가. 물론 나는 그와 일면식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세계 최빈국 독재체제의 일원이 되지 못해 안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이 상식이다.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으로 시끄러울 때 어떤 노의사와 실제로 오갔던 대화내용이다. 칠십을 바라보는 그이는 진심으로 걱정스러워하며 말했다. “만일 철없는 젊은이들이 광화문에 모여 ‘김정일 만세’를 외치면 그걸 어떻게 막겠는가?” 비슷한 우려를 방송토론에서도 들은 적이 있다. 답답한 노릇이다. 어르신께 최대한 예의를 갖추느라 애쓰기는 했지만 내 답변은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그렇게 하라고 내버려 두세요. 기막혀 웃지 도대체 누가 동조하겠어요?” 당신이라면 장군님의 현수막이 비에 젖는다고 울부짖는 북한 처녀들을 따라 울겠는가.

나이 60대 중반 이상, 마주 보고 총부리를 겨눴던 세대에게 김일성, 김정일을 객관화하라는 주문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뇌리에 북한 지도자는 적군이자 원수일 따름일 것이다. 하지만 사십대 막바지의 철없는 젊은이인 내게 북한 체제는 연민과 우려의 대상일 뿐이다. 특히 의사(擬似) 왕조를 구축한 김일성이 뿔 달린 괴물이거나 ‘몽둥이로 때려 잡아야할 미친 개’가 아니라 ‘마지막 비동맹’의 고뇌를 온몸으로 체현했던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공부가 필요했다. 남북한이 결코 제 1세계의 성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구꼴통’들은 정말 모르는 것일까.

이제는 자신의 세대를 스스로 선택하는 시대가 되었다. 물리적인 나이보다 그의 생각이 더 중요한 요건이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강정구-천정배-김종빈으로 이어지는 숨바꼭질에서 한나라당이 공식 발표한 내용은 당의 세대를 짐작하는데 참으로 시사적이다.

‘노무현 정권은 적화통일을 옹호하고 김일성 체제를 찬양하면서 국가 정체성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교수 한명을 구하기 위해 너무 많은 값을 지불했다.…검찰총장의 사퇴는 자유민주주의를 압박하는 노무현 정권의 독재에 대한 처절한 항거로 기록될 것이다’.


김갑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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