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사상이나 표현의 자유가 단지 어느 사회 구성원의 권력집단이나 다수의 생각과 똑같은 사상을 가지고 표현할 자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럴 거라면 애초에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말 자체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마음대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드러낼 권리”를 굳이 사람들이 거창하게 사상의 자유니, 표현의 자유니 하고 거듭 얘기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 주류와 같지 않은 생각, 심지어 “적대적”이기까지 한 생각이나 표현조차도 자유롭게 드러낼 권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인내가 필요한 것이고 성숙한 시민의식이 요구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6·25가 북한 주도의 통일전쟁이라는 주장이 갈릴레이 시절의 지동설만큼이나 신빙성이 있는 주장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게 틀린 주장이라면 왜 아닌지를 더 설득력 있게 얘기해 주면 될 일이고 그게 맞을 것 같은 의심이 든다면 좀 더 면밀히 따져 보면 그만이다. 강정구 교수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자는 사람들을 보면 갈릴레오를 잡아들인 그 때의 교회가 떠오른다. 그렇게 잡아넣지 않으면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틀린 주장이라고 하면서 사회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사법처리 운운하는 것은 갈릴레이 시절에나 있음직한 이야기다. 더 이상 검은 고양이로 변하는 마녀도 없고 그런 마녀를 사냥하러 다니며 불태울 화형대도 필요 없다. 우리는 지금 2005년에 살고 있다. 이종필/고려대학교 연구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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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와 갈릴레이 |
명색이 물리학 전공자라지만 난 가끔 아침마다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을 보면서 정말 지구가 저 태양 주위를 돌고 있기나 한 것인지 괜한 의문을 갖곤 한다. 지금이야 내가 이런 얘기하는 것이 아주 생뚱맞겠지만, 다들 잘 알듯이 불과 몇 백 년 전만 해도 상황은 그 반대였다.
갈릴레이가 자신의 관측사실을 토대로 지동설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나섰지만 그걸 위해서 교회와 심하게 맞서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대충 지동설 지지를 철회하고 적당히 무마하는 선에서 절충을 본 모양인데 어쨌든 갈릴레이 입장에서는 상당히 기분이 나빴을 게다. 아직도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경이에 찬 눈빛으로 자연의 조화로움에 경탄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갈릴레이처럼 꿋꿋하게 시대를 앞서갔던 선배 과학자들 덕분이다.
물론 지금에서야 어떤 과학적 주장을 놓고서 종교재판에 회부해 이단심판을 받게 하는 수준에 상당한 어떤 사법적 제재를 가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하기 어렵다. 예컨대 자연에는 초대칭성(supersymmery)이라는 것은 없다고 법령으로 정해놓고, 이를 연구·주장·선동하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넣는다면 이만한 코메디도 없을 게다. (지금 유럽에서는 이를 찾기 위한 가속기가 2007년에 가동될 예정이다.) 인간 배아 줄기 세포 연구를 반대하는 현재 카톨릭의 입장으로 보건대 아마도 황우석 교수는 벌써 이단심판을 받아 화형대 위에 섰을 것이고 동료 여성 연구자들은 십중팔구 “마녀” 신세를 면치 못했으리라.
인류가 근현대를 거치며 천부인권과 함께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가장 중요한 인간 존엄성의 요소로 여기게 된 것은 이런 과거 암흑기의 끔찍했던 경험,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사상이나 표현의 자유가 단지 어느 사회 구성원의 권력집단이나 다수의 생각과 똑같은 사상을 가지고 표현할 자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럴 거라면 애초에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말 자체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마음대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드러낼 권리”를 굳이 사람들이 거창하게 사상의 자유니, 표현의 자유니 하고 거듭 얘기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 주류와 같지 않은 생각, 심지어 “적대적”이기까지 한 생각이나 표현조차도 자유롭게 드러낼 권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인내가 필요한 것이고 성숙한 시민의식이 요구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6·25가 북한 주도의 통일전쟁이라는 주장이 갈릴레이 시절의 지동설만큼이나 신빙성이 있는 주장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게 틀린 주장이라면 왜 아닌지를 더 설득력 있게 얘기해 주면 될 일이고 그게 맞을 것 같은 의심이 든다면 좀 더 면밀히 따져 보면 그만이다. 강정구 교수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자는 사람들을 보면 갈릴레오를 잡아들인 그 때의 교회가 떠오른다. 그렇게 잡아넣지 않으면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틀린 주장이라고 하면서 사회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사법처리 운운하는 것은 갈릴레이 시절에나 있음직한 이야기다. 더 이상 검은 고양이로 변하는 마녀도 없고 그런 마녀를 사냥하러 다니며 불태울 화형대도 필요 없다. 우리는 지금 2005년에 살고 있다. 이종필/고려대학교 연구조교수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사상이나 표현의 자유가 단지 어느 사회 구성원의 권력집단이나 다수의 생각과 똑같은 사상을 가지고 표현할 자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럴 거라면 애초에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말 자체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마음대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드러낼 권리”를 굳이 사람들이 거창하게 사상의 자유니, 표현의 자유니 하고 거듭 얘기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 주류와 같지 않은 생각, 심지어 “적대적”이기까지 한 생각이나 표현조차도 자유롭게 드러낼 권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인내가 필요한 것이고 성숙한 시민의식이 요구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6·25가 북한 주도의 통일전쟁이라는 주장이 갈릴레이 시절의 지동설만큼이나 신빙성이 있는 주장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게 틀린 주장이라면 왜 아닌지를 더 설득력 있게 얘기해 주면 될 일이고 그게 맞을 것 같은 의심이 든다면 좀 더 면밀히 따져 보면 그만이다. 강정구 교수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자는 사람들을 보면 갈릴레오를 잡아들인 그 때의 교회가 떠오른다. 그렇게 잡아넣지 않으면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틀린 주장이라고 하면서 사회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사법처리 운운하는 것은 갈릴레이 시절에나 있음직한 이야기다. 더 이상 검은 고양이로 변하는 마녀도 없고 그런 마녀를 사냥하러 다니며 불태울 화형대도 필요 없다. 우리는 지금 2005년에 살고 있다. 이종필/고려대학교 연구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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