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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8 18:05 수정 : 2005.10.19 13:36

유레카

영화 기법인 몽타주(montage)는 원래 사진 용어로 프랑스말이다. ‘조합하다’는 뜻의 몽테(monter)에서 왔다고 한다. “여러 영상들을 화면 안에 조합한다”는 생각은 1917년 볼셰비키혁명 직후 선전·선동을 위해 영화로 눈을 돌린 러시아 감독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러시아의 영화 이론가 지가 베르토프는 “카메라에 잡힌 현실은 효과적 편집을 통해서만 전체로서 현실로 재생산된다”고 말했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감독의 ‘변증법적 몽타주’는 서로 다른 샷을 충돌시킴으로써 전혀 다른 영상적 의미를 만들어내자는 것이었다. 많은 마르크스주의자 예술가들처럼 에이젠슈테인 역시 예술은 현실의 반영이며 모순에 찬 현실은 상충되는 두 장면의 충돌을 통해서 역동적으로 드러난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 혁명적 영화 기법이 사실은 동양의 문화적 전통, 특히 표의문자인 한자의 조합 원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입 ‘구’(口)와 새 ‘조’(鳥)의 조합이 울 ‘명’(鳴)이 되듯이, 두 개의 이미지가 충돌해 전혀 다른 의미를 만들어 내는 한자의 구성은 변증법적 몽타주의 기본 원리가 됐다. 이 기법을 ‘지적 몽타주’라고 부르는 것도 이지적 종합을 통해서만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양문화를 뿌리로, 혁명과 대중 선동을 위해 탄생한 몽타주가 이제는 동양이 아닌 서양에서, 그것도 자본주의를 확대·강화하는 무기로 봉사하고 있다. 1925년 에이젠슈테인은 〈전함 포톰킨〉에서 ‘오데사 계단의 학살’ 장면을 몽타주로 처리해 노동자의 혁명심리를 자극했다. 반면, 요즘 대기업의 상품 광고는 한결 세련된 몽타주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소비자의 구매심리를 극대화한다. 유모차에 탄 아이를 화면 가운데 놓고 집단 총격전을 벌이는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언터처블〉은 할리우드영화가 혁명적 몽타주를 몽땅 집어삼킨 대표적 사례다.

김영철 논설위원 yc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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