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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9 17:26 수정 : 2005.10.19 23:17

조홍섭 편집국 부국장

조홍섭칼럼

‘조류독감과의 전쟁’에 한창인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 ‘유행병과 소통 지침’이라는 얼핏 한가해 보이는 보고서를 냈다. 그 배경엔 “유행병을 통제하는 데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전염병 학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보고서는 조류독감, 광우병, 사스 등 일련의 세계적인 질병 사태를 겪으면서 뼈저리게 느낀 교훈을 담고 있다. 그것은 “대유행병을 막으려면 정보 공개와 투명성, 그리고 참여를 통해 대중의 신뢰를 얻으라”는 말로 요약된다.

방부제 송어와 납 김치에 이어 조류독감이 사람들을 불안에 몰아넣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이런 일상의 위험에 대해 대중과 소통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대중의 불안을 일방적으로 잠재우려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질병관리본부 독감자문위원장은 지난 13일 국정홍보처의 <국정브리핑>에 실린 인터뷰에서 “우리 의료수준이라면 조류독감을 너무 겁낼 것 없다”며 “1918년 스페인 독감을 들어 ‘몇 만명 사망’ 운운하는 것은 소설”이라고 장담했다. 언론의 관심도 ‘만일의 사태’보다는 당장 피해가 예상되는 양계농가와 시장상인에 집중돼 있다. 그렇다면 조류독감은 세계보건기구와 선진국 사람들의 한가한 걱정거리일 뿐인가.

조류독감이 세계적인 경각심을 부른 결정적 이유는 1918년 스페인 독감과의 유사성 때문이다. 당시 세계에서 5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가, 주요 나라의 평균수명을 10살이나 떨어뜨렸을 정도로 큰 재앙이었다. 항바이러스제는 물론 항생제도 없던 당시와 지금을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2003년 우리나라 가금산업을 초토화시킨 이 바이러스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조류독감이 사람으로 건너뛰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 방한한 이종옥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은 귀담아 들어야 할 얘기를 남겼다. 그 하나는 “조류독감의 사람간 전파가 언젠가는 온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적어도 (전세계에서) 수백만명이 죽을 그 재앙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나라와 정치지도자는 뒷감당을 하지 못할 것”이란 섬뜩한 경고다.

세계보건기구는 최악의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과민반응과 공황을 부추기는 게 아니다. 사실 조류독감엔 불확실한 점이 적지 않다. 이 바이러스는 우리가 늘 걸리는 가벼운 독감처럼 사람 사이에 전염되는 법을 아예 배우지 못할지도 모른다. 요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철새가 바이러스를 옮긴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다. 동시에 우리는 대유행병이 닥쳤을 때 의료·행정·산업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지 검증해 본 적이 없다. 따라서 대중이 공포에 빠질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정책 당국자는 내일 대재앙이 터질지 모른다는 자세로 준비와 계획을 세우는 것이 순리다.

방부제 민물고기와 납 김치에 이어 조류독감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일관되게 “걱정할 것 없다” “절대 안전하다”고 말해 왔다. 정부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과학에 ‘무지한’ 대중은 겁먹지 말고 따라야 한다는 투다. 이런 소통방식이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은 수돗물과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논란에서 이미 증명됐다. 세계보건기구 보고서가 제시하는 방식은 다르다. 대중의 신뢰를 얻으려면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지나친 확신을 피하라고 권고한다. 대중은 솔직한 정보를 받으면 좀처럼 패닉에 빠지지 않는다. 준비가 덜 됐거나 구조적인 약점이 있음을 인정한다면, 비판은 받겠지만 대중의 믿음은 얻는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사상 처음으로 대유행병이 임박했음을 미리 알고 준비를 시작했다는 희망이 있다. ?편집국 부국장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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