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19 18:34
수정 : 2005.10.1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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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훈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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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방송에서 사투리를 사용할 수 없었던 적이 있다. 지역감정을 조장하기 때문에 금지한다고 했는데 우습게도 그런 조처를 취했던 그 시절이 가장 지역감정을 조장하던 때였다. 최근엔 방송이나 영화에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사투리를 남용하고 있는데 오히려 특정 사투리가 특정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스테레오타입’의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또한 사투리는 웃음을 만들어 내는 요소로도 자주 사용되는데 그것은 사투리가 표준말보다는 하위의 변종이며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는, 아래로 깔아보는 시선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사투리는 지역적 차이와 사회계층, 성별, 세대차 등 사회적인 요인들에 의해 생성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전국 주요 도시에 지하철이 뚫리는 요즘, 안내 방송을 그 지역 사투리로 한다면 어떨까 생각해 봤다.
#전라도 광주의 지하철 안내 방송
아따~ 시방 멈춰선 데는 광주시청역잉게~ 요기서 내릴라고 뽐잡는 분덜은 까오잡지 말고 싸게싸게 내려불고… 문짝과 바닥 틈이 허벌나게 커버린게… 다리몽댕이 안낑기게 엔간치들 조심하시랑게. 댕기기 옹색혀서 겁나게 미안스럽네여~
#부산의 지하철을 이용하는 고등학생. 그의 신조는 ‘앉자마자 무조건 자자’. 그의 신조대로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무릎을 툭툭 치는 것이 아닌가. 직감적으로 할머니란 걸 알았다. 눈감고 버티다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할머니의 한마디. “왜 좀 더 개기 보시지.”
#충청도에 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서울에 올라와 처음 지하철을 탔다. “이번 역은 종로 2가,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이번 역은 종로 5가,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물었다. “영감! 종로 김가는 없슈?” “왜 없어? 종로에는 김두한이가 있잖여.”
최근엔 〈웰컴 투 동막골〉 때문에 강원도 사투리가 인기를 끌고 있다. 강릉 오죽헌에서 출생한 율곡 선생이 어머니 신사임당의 강원도 사투리를 따라했다면 ‘십만 양병설’은 이렇게 바뀌지 않았을까?
#강원도 버전 십만 양병설
“전하! 자들이 움메나(얼마나) 빡신지(억센지), 영깽이(여우) 같애가지고 하마(벌써) 서구문물을 받아들여가지고요, 쇠꼽 덩거리(쇠 덩어리)를 막 자들고 발쿠고(두드리고 펴고) 이래가지고 뭔 조총이란 걸 맹글었는데, 한쪽 구녕(구멍) 큰 데다가는 화약 덩거리하고 째재한 쇠꼽 덩거리를 우겨넣고는, 이쪽 반대편에는 쪼그마한 구녕(구멍)을 뚤버서(뚫어서) 거기다 눈까리(눈알)를 들이대고, 저 앞에 있는 사람을 존주어서(겨누어서) 들이쏘며는, 거기에 한번 걷어들리면(걸리면) 대뜨번에(대번에) 쎄싸리가 빠지잖소(죽지 않소). 그 총알이 대가빠리(머리)에 맞으면… 마이 아파.
무지개는 각기 다른 7가지 색깔이 합쳐서 만들어진다. 다양한 색깔의 조화가 아름답다. 세월이 흐르면 특정 지역에 대한 악감정이나 편견, 차별, 과장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젊은 층에서도 망국적 지역감정의 음습한 이끼가 자라고 있다. 특정 지역에 대한 인터넷 게시판의 댓글을 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뉴스의 본질은 보지 못하고 그 뉴스가 발생한 지역이나 출신 지역만 가지고 상대를 싸잡아 인신공격을 하고 있다. 몇몇 인터넷 뉴스 사이트는 이런 ‘색깔’ 정신장애인들 때문에 댓글 게시판이 아니라 쓰레기터가 돼버린 느낌이다.
‘무지개’의 서로 다른 색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색깔만 주장한다면, 그래서 타인의 색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앞날은 무지 ‘개’ 같을 것이다.
신상훈/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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