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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0 17:54 수정 : 2005.10.20 17:54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세상읽기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검소하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 아들 헨리 포드 2세는 낭비벽이 심했다. 이에 대해 아버지 포드는 “당연한 일 아닌가. 그 친구는 아버지가 갑부지만 나는 그런 아버지가 없지 않은가”라고 했다고 한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성공한 기업가와 그의 자손들 간의 차이를 잘 나타내는 일화다. 그래도 포드 2세는 경영권을 물려받아 기업을 잘 키웠고, 스웨덴의 발렌베리 재벌이나 이탈리아의 피아트 등 3, 4대씩 창업주의 자손들이 경영을 잘 하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2, 3세 소유주들은 경영능력도 떨어지고 생활태도도 방만하여 물려받은 기업을 지키지 못하고 몰락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이룬 것을 자손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에서처럼 이런 동기를 말살하려고 하면 엄청난 부작용이 생긴다. 그러나 동시에 부모 잘 만난 사람의 인생 출발선이 지나치게 앞서 있는 것은 어떤 사회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상속세와 증여세가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삼성의 에버랜드 사건으로 대표되는 기업들의 상속·증여세 포탈은 사회가 인정하는 이상의 ‘부모 덕’을 보려고 한 행위로,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재벌의 문제를 단순히 탈세 또는 주주권 보호의 문제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 재벌기업들이 고성장 시대를 거치며 단시간에 급격하게 덩치를 키웠기 때문에 총수 가족의 지분이 매우 작고, 이에 따라 상속·증여세를 제대로 내면서 2, 3세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가 힘든 구조라는 데 있다. 특히 최근까지 지주회사가 금지돼, 복잡한 순환출자로 그룹구조를 유지해온 터라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자본시장이 개방돼 덩치 큰 외국 금융자본 등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도 쉬워졌다. 그만큼 변칙 증여·상속 없이는 경영권 승계뿐 아니라 그룹 자체의 유지가 힘들어진 것이다.

물론 기업집단보다 독립기업이 더 좋다고 믿는 사람들은 재벌 2, 3세의 탈세를 처벌하여 그룹구조가 해체되면 일석이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룹구조 없이 기업이 계속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다각화하며 성장하는 것은 힘들다. 삼성은 설탕이나 양복지 판 돈으로 반도체에 진출했고, 현대는 건설에서 번 돈으로 자동차를 키웠다. 핀란드의 노키아도 벌목, 고무, 전선 등에서 번 돈을 17년 동안 이윤도 못내는 전자업체에 쏟아부어 세계 최고의 이동전화 회사를 키워냈다. 앞으로 현대나 삼성이 자동차나 전자에서 번 돈으로 새로이 진출할 사업이 분명히 생길 것이다.

기업집단의 장점을 살리려고 재벌의 탈세를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경영권 승계와 그룹구조 유지의 두 문제를 분리하면 의외로 해결책은 많아진다. 예를 들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그룹구조가 와해할 우려가 있는 재벌기업에 국민연금이나 국영은행들이 ‘국민 주주’로 참여해 일단 그룹구조를 유지해준 뒤, 재벌 2, 3세들에게 10년 정도 유예기간을 줘서 경영 성과가 안 좋으면 경영에서 손을 떼게 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대가로 정부는 재벌들이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노사관계를 개선하며 국민경제에 필요한 규제를 받아들이도록 요구해야 한다.

재벌 기업들은 총수 가족들 것만도 아니지만 주주들의 것만도 아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보조를 받고, 그들이 신산업에 진출한 초기에는 보호무역을 통해 국민이 좋지 않은 제품을 사서 쓰며 키워낸 국민의 기업이다. 재벌 문제를 탈세나 주주권 보호라는 좁은 시각이 아니라 국민경제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하준/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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