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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1 18:19 수정 : 2005.10.21 18:19

오태규 사회부장

편집국에서

일본의 우파신문인 <산케이신문>의 구로다 가쓰히로 서울지국장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도마에 올랐다. 15일 부산 동서대에서 열린 한-일 사회문화포럼 주최의 ‘한-일 국교 40주년, 한-일 언론의 현주소와 향후 전망’이라는 언론인 워크숍에서였다.

‘한-일 현안과 언론보도’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한국인 주제 발표자가 지정 토론자로 나온 구로다 지국장에게 “당신이 쓰는 기사를 보면 한국을 매우 경시하고 증오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국에 25년 동안 살며 주로 반한적이고 극우적인 시각에서 ‘한국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 놓는’ 보도를 해온 데 대한 서운한 감정의 표출인 듯했다. 한 국회의원 토론자도 그가 한-일 우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보도만 한다며 ‘차라리 한국을 떠나는 게 좋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그를 지켜보는 방청석의 눈길에서도 한기가 느껴졌다.

이 순간, 역시 토론자로 참석한 나는 구로다 지국장을 유심히 쳐다봤다. 애써 곤혹스러움을 감추려는 그의 모습에서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구로다 지국장은 몇 사람의 파상 공격에 “내가 그런 기사를 쓰는 것은 한국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로인데 한국이 옛날에 비해 너무 빨리 좌경화했기 때문에 우익으로 보이는 것이다”라며 변명했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논리였다. 이후에도 단상과 단하에서 가시돋친 말이 몇 차례 오갔다. 토론장 열기도 후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토론이 끝난 뒤의 분위기는 폭풍이 지난 뒤의 모습처럼 평화로웠다. 서로 악수를 나누고 명함을 교환하고.

한 참석자는 “구로다 기자가 아무런 위협도 느끼지 않고 이런 자리에 와서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 한국 사회가 얼마나 민주화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쪽 참석자도 “아마 다른 나라에서는 이 정도의 분노를 받는 대상이 된다면 추방되거나 공격을 당했을 것”이라고 동감을 표시했다.

강정구 교수와 구로다 지국장. 둘은 생각의 방향이 전혀 다르다. 그러나 다른 쪽으로부터 격렬한 증오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처지에 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구로다 지국장과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입을 막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강 교수의 말과 글에 법률적인 족쇄를 채우지 못해 난리다.

강 교수의 주장에 대한 찬반 분포를 보면, 분명히 반대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그에게서 말할 자유를 빼앗을 명분이 될 수는 없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다. 말할 자유의 확보가 얼마나 소중했으면,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가 “나는 너의 주장에 반대한다. 그러나 네가 말할 자유를 위해서는 목숨을 걸겠다”고 외쳤겠는가?

<한겨레>는 대한상공회의소 김상렬 상근부회장이 강 교수 같은 반시장주의자의 강의를 받은 학생을 입사시험에서 걸러내겠다는 요지의 말을 했을 때 그를 강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또 경찰이 강 교수를 구속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뒤에는 가장 우파적인 신문의 기자가 묻는다는 태도로 그를 인터뷰했다. 두 기사를 냉정히 뜯어 보면, 강 교수와 관련한 보도의 중심이 ‘말할 자유’에 있다는 것을 쉽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강 교수 사건을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죽이기’가 아니라, 생각이 다르지만 ‘같이 살기’의 연습장으로 삼을 수는 없을까? 이것이 강 교수 사건을 바라보는 나의 문제의식이다.

오태규/사회부장 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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