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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3 16:58 수정 : 2005.10.23 16:58

유레카

국민이 추구하는 나라의 형태와 이상은 헌법 들머리에 담긴다. 우리 헌법 1조는 이렇게 표현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1조 1항)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2항)’ 그동안 9번씩이나 개헌됐지만, 이 조항만큼은 그대로다.

그러나 이 조항은 1990년대 중반까지 그저 꿈으로만 존재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왔고, 주권은 권력자에게 있었다. 독재정권이 헌법 1조를 짓밟았던 근거는 반공 국시(國是)였다. 자유 민주 공화정의 이념을 부정한 반공법·유신헌법·긴급조치 따위는 이 국시의 사생아였다.

국시란 법률적 용어도, 역사적 용어도 아니다. 사전의 뜻풀이조차 혼란스럽다. 민중서관의 국어사전 최근판은 “국민 전체가 옳다고 인정한 주의와 시정의 근본 방침”이라고 하고, 96년 판은 “나라의 정신에 비추어 옳다고 여겨지는 주의와 방침”이라고 풀이한다.

이승만은 48년 9월 언론 표현의 자유를 원천봉쇄하는 7개항의 반공언론정책을 발표했다. (반공)국시 국책 위반기사, 정부 모략기사, 이북 괴뢰정권 비호기사, 허위사실 날조 선동기사, 국위를 손상시키는 기사, 자극적인 논조와 보도로 민심에 악영향을 끼친 기사, 국가기밀 누설기사 등이 금지대상이었다. 5·16쿠데타 직후 박정희가 내놓은 혁명공약 1호는 ‘반공을 국시의 제1로 삼고 반공 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였다. 민정 이양 등의 약속을 밥먹듯이 파기하면서도 피살될 때까지 지킨 공약은 이것뿐이었다. 19년 전 이맘때(10월16일) 전두환 정권은 ‘반공 대신 통일이 국시가 돼야 한다’고 발언한 유성환 의원을 구속시켰다.

쿠데타 초에 말(국시)이 있어, 밟으라 하니 밟고 가두라 하니 가두고 죽으라 하니 죽었다. 이 권력창조의 열쇠를 7~8년 써먹지 못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정체성이란 이름으로 국시 논란을 일으키는 모습이 처량하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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