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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4 18:34 수정 : 2005.10.24 18:34

박예랑 방송작가

세상읽기

지난 한 주는 한 여자배우의 결혼식 주간이었던 것 같다. 얼마 전부터 그녀의 결혼을 둘러싼 일거수일투족이 모든 매체를 통해 지상중계되더니, 결혼식 당일은 분초 단위로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생중계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상황실까지 마련해 놓고 녹화중계로 받아 쓴 기사들이었지만….

언론들은 처음 결혼이 발표될 때 신랑의 학벌과 집안 이야기를 세세하게 거론하더니, 실물을 한번 보지도 않고 몸짱이라고까지 대서특필하며 온갖 미사여구를 다 갖다붙이며 앞다투어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전념하였다. 물론 신랑이 일반에게 공개된 뒤 몸짱이란 단어는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지만…. 그런데 곧바로 독자를 흡족하게 할 기삿거리를 잡았다고 판단했는지, 연이어 신랑의 과거까지 들춰가며 다시 신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결국 이달 호 여성지들은 이 두 가지를 절묘하게 조합해 ‘모든 완벽한 조건을 갖춘, 그러나 돌아온 싱글’이라는 제목을 선택해 독자의 기묘한 심리를 절묘하게 이끌겠다고 나섰다. 한마디로 대중의 관심 대상인 여배우를 놓고 ‘완벽한 조건의 신랑감’이라는 타이틀에 ‘역시 그녀’라는 반응과, 동시에 그녀가 입었던 드레스까지 대대적으로 광고해가며 ‘시기·질투심’을 끌어내고, ‘돌아온 싱글’에서 극도로 오른 시기심과 질투심에 대한 ‘보상 심리’를 턱 하니 하나 선물로 던져준 듯하다.

도대체 요즘 세상에 개인의 과거사가 왜 이리도 큰 이슈가 되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아마도 이 여배우의 결혼은 기자들의 처지에서 오랜만에 만난 대어에 가까운 흥미진진한 소재였던 것 같다. 하지만, 결코 기자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대중이 원했던 기사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인지했으면 한다. 모든 매체의 기자들은 이번 결혼기사를 다루면서 여성은 여성의 적이라는 구태의연한 공식에서 출발한 것 같은데, 아직도 언론인들이 이런 태도를 갖고 있다니 우려스럽다. ‘시기심과 질투심’ 그리고 ‘보상심리’를 부추기는 매체의 보도 행태는 당사자들에게 정신적으로 피해를 줬을 뿐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비쳤다.

이런 심리를 자극해 여자와 여자를 적대관계로 보는 구도는, 과거 드라마 공식에서 반드시 등장했던 ‘악녀’의 개념과 유사하다. 여자에게, 그 여자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적은 항상 구도상 필요한 전제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악녀라는 개념이 드라마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지도 꽤 되었다. 작가들이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에 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만큼 대중은 변했다.

여성은 여성의 적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여성의 편이 될 수 있다. 동지애와 자매애로 이루어진 여성들이야말로 어느 집단보다 강한 연대의식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여자친구라는 단어는 그 어떤 관계보다 견고함을 가지고 있다. 사랑한다고, 없으면 못살 것처럼 요란하게 결혼한 뒤에도 이혼을 하지만, 여자친구는 항상 옆에 남아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여자와 여자의 관계는 영원하다.

더 이상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라, 여자의 동지야말로 여자라는, 발상 전환의 기사를 보고 싶다. ‘독자가 궁금해한다’라는 자기 합리화에서 시작해, 웨딩드레스와 피로연 드레스까지 보도한 기자들의 도가 지나친 욕구는 오히려 대중들로부터 냉담한 시선만 받고 말았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저 대중은 아름다운 그녀가 결혼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이 전해 듣기를 원할 뿐이다.

박예랑/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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