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25 18:02
수정 : 2005.10.2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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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자 가톨릭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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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한반도의 분단이 이념과 체제의 대립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대립은 지난 반세기 이상 남한사회 내부에서 분열과 갈등을 야기하는 적대적 원리로 굳혀져 왔다. 자유민주주의가 진일보했다고 하는 오늘에 와서도 이 원리는 우리 사회를 두 쪽으로 갈라낼 만큼 여전히 막강한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남한의 자유민주주의는 바로 여기서 거대한 벽에 부닥치게 되는데, 이는 한반도를 두 동강낸 물리적 분단보다도 더 큰 비극인 남한 내부의 사회정치적, 사상적 분단의 벽을 말한다. 더구나 이 방벽은 전쟁과 이산가족의 깊은 상처들로 석화되어 있기에 이성적·논리적 잣대로만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것에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 사회의 내부적 분단은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을 적대적 원리로 무장시키고 국민을 어느 한 쪽에 설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분단의 잣대로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식으로 사상과 정치적 견해에 대한 자기검열을 강요해왔고, 이 때문에 진보와 보수의 의미 자체가 왜곡된 채 그 허상만 난무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또한 분단의 잣대를 들이대면 언제나 무엇에서든 온 국민을 ‘북한파’와 ‘남한파’로 편가르기해야 하는 것처럼 단순무식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러한 편가르기로 정치와 언론이 작동하고 이것이 먹히는 사회라고 한다면, 이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더 처절한 분단의 희생자로 만드는 것일 뿐이다. 분단을 평생 탓하며 분단의 모순과 폐해들을 너무나 많이 경험해온 사람들이 분단의 잣대에 익숙해져버린 자기모순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
지금 우리에게는 무엇이 분단의 극복인가? 우리 사회에서 지배하는 통일지상주의 역시 이 내부적 분단의 적대적 토양에서 자라난 것이라고 한다면 여기서 말하는 통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통일 프로젝트’와 내부적 분단이 두 개의 다른 얼굴로 대립하는 현실을 우리는 언제까지 방치할 수 있을 것인가?
통일 프로젝트는 이산가족의 상봉에서부터 한없이 쏟아내는 역사적 한의 울음소리로 민족의 심금을 울려왔고, 언제부터인가 학문적 연구나 정치 공약에서도 국민의 인기를 끌어내는 단골 메뉴가 되었으며, 이제는 대중의 관광상품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한반도로 날아온 노벨 평화상 역시 분단의 선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요란한 통일 프로젝트들은 내부적 분단의 적대적 원리가 지배해온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가?
여당 야당을 가릴 것 없이 통일을 국가와 민족의 대명제로 내세운다면, 통일 프로젝트는 이제부터라도 우리 사회의 내부적 분단과 그 토양을 근절하는 작업과 병행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 토양을 정략적 목적을 위한 국가적 소모전으로 확대시킬 것이 아니라 분단사회의 자기모순을 진정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더 열심히 고민해야 한다. 통일 프로젝트를 남발하기 이전에 국민을 분단의 외부적·내부적 이중 질곡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에 확실한 의지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분단사회의 자기모순의 극복을 전제하지 않는 통일론은 위선이고 계략일 뿐이다. 통일론은 바로 남한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에 족쇄를 채우는 분단사회 그 자체를 단절하고 극복하는 것에서부터 그 토대를 다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영자/가톨릭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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