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10.25 18:03 수정 : 2005.10.25 18:03

이일영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경제전망대

‘87년 체제’는 그 성과에도 불구하고 교착과 분열의 체제이기도 하다. 한 대학교수의 발언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한데 어우러져 야단법석을 치르는 것도 갈등을 확대하고 과거에 얽매이는 정치와 운동 메커니즘 때문이다.

앞으로도 줄지어 소동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은 대외경제전략의 문제다. 정부와 세계무역기구(WTO) 사이의 쌀 협상 결과에 대한 비준 문제는 민주노동당의 반대에 부딪쳐 있다. 한쪽에서는 한-일 자유무역협정이 늦어지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6자회담과 관련하여 새로운 진전이 없으면 다가오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주요 의제는 아세안,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문제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이념 논쟁이 다분히 과거의 역사적 유산에 규정된 것이라면, 자유무역협정 문제는 미래의 형성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기존의 이념 지도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이슈이기도 하다.

지난 20년간 급속한 변화의 패러다임을 주도한 것은 세계화다. 세계경제에서 생산망과 국외 직접투자가 지역적으로 산업단지(클러스터)를 형성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중국 연안 지역, 일본, 한국은 공업화를 달성했다. 세계화는 동북아의 경제적 비중과 상호 연결성을 극적으로 증가시켰다.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에 깊숙이 연결된 한국으로서는 이제 과거의 대외전략과 기능을 새롭게 조정해야 한다. 국경과 국민을 절대시하여 ‘개방 지지’와 ‘개방 반대’로 분열과 갈등을 반복하던 데에서, 이제는 지역협력과 통합이라는 의제의 비중을 늘리는 것이 마땅하다.

자유무역협정은 경제 통합의 주요한 수단이므로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경제 통합은 개별 사례마다 배경이 달라 정합적인 개념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종래의 이념에 따라 찬반 견해가 정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역사학자 아리프 딜릭은 “통합 경향에 대한 미국 내의 항의는 세계화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대변하는 동시에 과거의 특권을 보존하려는 우익적 노력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한국에서도 세계화나 지역 통합에 반대하는 것만으로 진보적이라고 간주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 한층 더 문제가 되는 존재는 극단적이고 공격적인 통합론자들이다.

통합은 경제 통합, 제도 통합은 물론 사회 통합, 문화 통합, 외교안보 통합까지 포함하는 지역 정체성 형성의 과정이다. 그러나 통상교섭본부는 ‘동시다발적’으로 시장통합을 추진하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다. 그러니 역내 국가와 지역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협력적 프로젝트 개발은 크게 부족하다. 그러다가도 앞뒤 안 따지고 마음 급하게 추진하는 것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한-미 동맹이라는 외교안보적 이해까지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현안이 되는 스크린쿼터 문제, 쇠고기 수입, 제약산업과 서비스 부문의 피해 가능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논의되지 않고 있다. 여기서 무리하게 자유무역협정을 밀어붙이면 결국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국내적으로 분열을 조장하며 통합과 지역주의에 대한 공격을 초래할 것이다.

‘비판적 지역주의’는 경제적 불평등과 폭력을 제어하는 정치·경제를 위한 장소로서 ‘지역’ 형성을 지지한다. 그렇다면, 자유주의와 보호주의가 분열을 증폭하고 교착을 지속하게 한다면, 이들을 함께 비판해야 한다.

이일영/한신대 교수·경제학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