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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5 18:15 수정 : 2005.10.25 18:15

유레카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너도나도 ‘관객 1000만명 시대’를 거론한다. 이 많은 사람들이 같은 영화를 본다는 건 사회학적으로나 예술사적으로 놀랍다. 세계 예술사를 들춰보더라도 인구의 4분의 1 가까이가 동일한 예술 작품을, 그것도 불과 몇 달 사이에 한꺼번에 감상한 사례는 드물지 싶다. 영화 관람이 소설 읽기나 미술 감상, 텔레비전 시청과는 달리 꽤 성가신 행위라면 더 범상한 일이 아니다. 바야흐로 ‘영화의 시대’임이 틀림없다.

영화의 시대를 예고한 사람은 헝가리 출신의 예술사회학자 아널드 하우저다. 그는 반세기 전에 쓴 방대한 분량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마지막 장의 제목을 아예 ‘영화의 시대’라고 달았다. 그는 영화를 ‘유럽의 근대문명이 개인주의적 도정에 오른 이래 대중을 위해 예술을 생산한 최초의 시도’로 규정하며 ‘값싸게 재생되는 덕분에 대중적이고 민주적인 예술’이라고 찬양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 ‘젊고 대중적인’ 예술 장르의 밝지 않은 미래도 예견했다. 닥쳐올 ‘영화의 위기’는 영화를 보는 대중, 곧 ‘관객의 계급적 위기’에서 찾아졌다. “예술사적으로 모든 장르의 예술이 특정 수요자층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화 관객은 영화관에 몰려든다는 점말고 아무 공통점이 없다.” 공통점이 있다면 영화를 통해 계층 상승의 꿈이라는 ‘사회적 로맨티시즘’의 성취를 맛본다는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김기덕 감독이 예고 없이 나타나 한국 영화의 위기를 고발했다고 한다. “한국 영화가 슬프다. 예술 영화가 주목받지 못하는 데는 영화인과 관객,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상업 영화에 대한 관객의 집중 현상은 예술 영화를 영화제용 영화로 만든다.” “진정한 예술 민주화는 (대중의 기호에 맞게) 예술을 단순화하는 게 아니라 대중의 예술적 판단 능력을 기르는 데 있다”는 하우저의 결론은 김 감독에게 얼마나 위로가 될까.

김영철 논설위원 yc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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