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26 20:46
수정 : 2005.10.26 20:46
유레카
“송홧가루로 음식을 해먹고, 송순으로 술을 빚어 먹고, 송기로 개피떡을 해먹고, 솔잎으로 송편을 쪄 먹고, 청송방울로 장판을 하고, 마른 솔방울로 불씨를 묻고, 송진으로 약재를 삼고, 송진이 묵어서 호박이 되고 밀화가 되면 우리의 귀중한 패물이었다. 섭(섶)을 베어 울섭을 하고 관솔을 썼고, 뿌리를 캐서 가구를 만들고, 굵은 가지를 쳐서 숯을 구웠고, 연기를 몰아 먹을 만들고, 청솔을 꺾어 도자기를 구웠고, 가옥의 목재는 전부 소나무를 사용했던 까닭에 새집에는 청향(淸香)이 그윽했고, 몇백년 후에도 가옥의 기둥이 휘는 법이 없으며, 풍화가 되어도 부드러운 대패 자국이 그대로 살아 건축의 미를 전해주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린이를 낳으면 대문에 청솔가지를 달았고, 사람이 죽어도 묘전에 청솔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청솔은 우리를 저버린 적이 없다.”
윤오영 선생의 <백의와 청송의 변>에 나오는 한 대목처럼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삶과 늘 함께했다. 산림청 의식 조사에서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변함 없이 소나무였다. 1961년에 발간된 <대한민국지도>를 보면, 마을 이름 중 송(松)이 첫 음절에 들어있는 마을만도 619곳에 이를 정도였다. 정동주씨는 <소나무>란 책에서 솔은 상(上) 고(高) 원(元)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나무 중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김동리 선생도 소나무를 두고 백학의 장수와 우마의 실익과 기린의 고고를 함께 지녔다며, 백목지장(百木之長)이라고 일컬었다.
산림청 집계로, 한국 숲에서 소나무의 비중은 면적 기준으로 4분의 1이나 된다. 참나무 다음이다. 한때는 가장 많은 수종이었지만 기후 온난화 영향과 솔잎혹파리 등 병충해로 많이 줄었다고 한다. 이젠 소나무 재선충 때문에 한반도에서 아예 사라질지도 모를 위기에 처했다. 소나무 없는 한국인의 삶은 상상하기도 싫다.
김병수 논설위원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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