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27 20:02
수정 : 2005.10.27 20:02
유레카
시월이 가기 전에 새롭게 발견해야 마땅한 삶이 있다. 고 신향식. “잘 웃고 조용하고 누구에게나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었다. 함께 일한 모든 이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고학으로 서울대 철학과를 서른에 졸업했다. 만학의 철학도, 마지막 자리는 남민전 중앙위원이었다. 고 이재문과 더불어 남민전을 결성한 이유로, 아니 박정희 ‘총통체제’에 무장항쟁을 꾀한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오월’을 학살한 전두환은 1982년 10월 8일 기어이 신향식을 처형했다.
민중시인 김남주는 애도했다. “신향식 동지/ 사형대의 문턱에 한 발을 올려놓고/ 고개 돌려 그가 나에게 했던 말 그것은/ 죽으면 내 무덤에 잣나무나 한 그루 심어다오/ 그 뿐이었다”(잣나무나 한 그루).
그랬다. 혁명을 노래한 시인은 신향식을 철학이 물씬 묻어나는 투사로 기억했다. 박정희 쿠데타가 없었다면, 신향식은 지금도 철학의 길을 걷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쿠데타가 노동운동을 쓸어버린 공간에서 당당히 사무직 노동운동을 벌였다. 통일혁명당에 가담해 옥고도 치렀다. 비전향으로 만기 출소한 그는 ‘유신’이 닥치자 ‘지하생활’로 돌아섰다. 이재문과 남민전을 이끌었다. 통혁당이나 남민전에 참여했으되 생명을 잃지 않은 지식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두 조직에서 두루 헌신적으로 활동한 신향식의 사형이 속절없이 안타깝다. 이재문의 옥사가 그러했듯이.
생전의 김남주는 “무덤가에 한 그루 나무를 심고” 절창을 했다. “그렇다 이 나무는 동지의 나무다/ 민족의 나무 해방의 나무 밥과 자유의 나무다/ 사람들아 서러워 말아라 이 나무 밑에서/ …/ 역사에서 위대한 것은 승리만이 아니다 패배 또한 위대한 것이다.”
패배 또한 위대하다는 통찰이 번득인다. “서러워 말아라”고 시인이 노래했는데도 왜일까. 가는 시월이 서러운 까닭은.
손석춘 논설위원
s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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