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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7 20:08 수정 : 2005.10.27 20:08

이종원 일본 릿쿄대학 교수, 국제정치

세상읽기

선거에 압승한 여세를 몰아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온 직후라 형식 면에서는 “사적 참배”를 강조하는 몇 가지 눈가림 장치를 마련했다. 하지만 본질적 의미에서는 변함이 없다. 자민당의 압승으로 국내정치 기반이 엄청나게 강화된 상황이라 오히려 참배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적 관측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의도는 어떻게 보면 명확하다. 무엇보다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정치가’라는 것이 정치가 고이즈미의 개성이자 트레이드 마크였다. 총리가 된 것도 이같은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다. 앞으로 1년 남은 임기 동안 몇가지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대중적 이미지라는 기반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특정한 조직 기반을 가지지 않은 정치가 고이즈미로서는 일관된 이미지가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자 무기다.

나아가 고이즈미 총리의 고집스러운 참배 강행의 배경에는 한국과 중국의 ‘역사 카드’를 무력화하는 전례를 만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참배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참배가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 고이즈미 총리는 “20~30년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정상적 관계로 가는 하나의 길이다”라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역사 문제에 있어서 ‘보통국가’를 지향한다는 논리이다.

물론 이런 발상은 타당하지 않다. 참배를 되풀이하고 기정사실화한다고 해서 역사 문제가 자연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피로감 속에서 대중적 반발은 약화될 수도 있다. 일본 언론은 이번에는 한국이나 중국에서 지난 봄과 같은 격렬한 반일 시위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거리 시위가 역사 문제에 대한 반응의 척도는 아니다. 뉴스 영상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과거사 문제가 잠잠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다.

문제는 한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통상의 접촉을 계속하면서 일본의 전향적 변화를 촉구한다는 한국 정부의 결정은 기본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야스쿠니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정·재계 일각에서도 일정한 처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점증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촉진하기 위해서도 접촉을 통한 직접적인 문제 제기가 오히려 효과적일 것이다. 정상간의 상호방문을 완전히 단절하고 있는 중국과는 다소 다른 접근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일종의 역할 분담도 된다. 최근 일본 국회의원들이 초당파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대신할 국립추도시설 건설을 촉구하는 모임을 시작했다. 고이즈미 총리 이후의 상황을 고려할 때도 이러한 일본 내부의 대체안 모색을 장려하고 촉구하는 것이 좀더 장기적이고 현실적인 대응이 될 것이다.

북-일 교섭 움직임도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11월2일 내각 개편 때 외무장관에 누가 임명될 것인지와 더불어 3일로 예정된 북-일 접촉의 향방이 주목된다. 작년 이래 결정적 장애가 되어 온 납치 피해자 요코타 메구미의 가짜 유골 문제에 관해서도 일본 정부의 발언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북-일 간의 타협점을 찾는 정치적 움직임이다.

북-일 국교정상화는 한국의 이해와도 겹치는 부분이며, 장기적으로 일본의 ‘우경화’를 억제하는 틀로서의 의미도 있다. 야스쿠니 참배를 용인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서도 일본에 대해서는 다면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이종원/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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