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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7 20:09 수정 : 2005.10.27 20:09

류병운 영산대 교수·국제법

발언대

반도체, 엘시디, 휴대전화 관련기술의 유출에 이어 최근에는 현대차의 엔진 및 내구성에 관한 일부 기술이 중국기업에 유출되기 직전 적발되었다고 한다.

기업 영업비밀의 경제적 가치는 비밀성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노하우, 첨단기술 등 많은 귀중한 영업비밀들을 제3자에게 얼마만큼 이를 노출하지 않는가에 재산적 가치가 달려 있는, 아주 깨지기 쉬운 유리잔 같은 것이다. 모방하기가 쉽기 때문에 특허권, 저작권 등 각종 지적재산권법적 제도로도 충분히 보호받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특히, 정보통신의 발달은 영업비밀을 침해하는 산업스파이 행위를 더욱 은밀하고 쉽게 하는 반면, 범죄행위의 증거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졌다.

2004년 말 개정된 ‘부정경쟁방지및영업비밀보호에관한법률’이 산업스파이로부터 영업비밀을 보호하는 데 진일보한 면이 있기는 하다. 해당기업 임직원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기업의 영업비밀을 국내외로 유출하면 영업비밀침해범으로 처벌하도록 한 것이나, 개인이 아닌 단체에 대해서도 처벌할 수 있도록 양벌규정을 둔 것, 형량을 강화한 것 등이 그 예다. 그러나 영업비밀 침해의 핵심적인 범죄행위를 목적범으로 규정하여 그 범죄 성립을 제한하고 있고, 이런 지능범죄에 대처할 수 있는 사법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현실에서 이 법은 결코 ‘효율적인 법’이 될 수 없다.

타기업의 영업비밀을 빼내는 데 혈안이 된 기업들의 사례나, 한국기업의 영업비밀이 중국 등으로 유출되는 사례가 빈번해진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까지 이 법 말고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스파이 사건이 터지면 대안으로 거론되는 게 처벌 수위를 강화하자는 정도이다. 처벌을 하려 해도 일단 이런 지능범죄를 효과적으로 적발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닌가. 미국에서 적발된 산업스파이 사례를 보면 대체로 범인은 고도의 지적 능력이 있으며, 심지어 대만, 중국정부 등의 지원을 받아 범죄를 기획하고 실행한 경우도 상당하다.

이런 범죄일수록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미국의 ‘1996년 경제스파이법’ 위반 사례들이 대부분 함정수사로 적발된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 법조계는 관념적인 ‘정의’에 입각하여 함정수사제도의 도입에 비판적이다. 유죄협상(플리바게닝) 제도도 산업스파이 행위를 적발해 내는 단서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이나, 최근 검사의 기소권과 관련한 논의를 보면 도입에 대체로 부정적이다. 그러나 함정수사든 유죄협상이든 그 목적은 ‘국민’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스파이’를 적발·처벌하는 것이고, ‘모든 범죄자는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칸트식 정의가 아니라 산업스파이 행위를 효과적으로 막는 것이다.

산업스파이 행위를 효과적으로 적발·처벌하려면 미국의 ‘1996년 경제스파이법’보다 진일보한 법을 제정하는 한편, 함정수사제도의 도입, 영업비밀 침해 행위에 대한 기업의 자력구제 요건의 대폭 완화, 영업비밀을 취급하던 피고용인에 대한 이직금지를 포함한 영업비밀 유출 금지 가처분의 활성화, 수사·재판 과정의 영업비밀 노출 방지 제도, 획기적인 신고 포상금, 국가정보기관의 과학적·전문적인 정보 획득 기술 개발과 기업에 대한 보안정보 제공 등의 혁신적인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

오늘날 법은 중요한 정책 도구이다. 그리고 미래는 첨단과학의 시대로, 영업비밀을 포함한 지적재산의 효과적 보호에 우리나라의 국운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류병운/영산대 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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