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길 사회부 행정팀장
|
편집국에서
오랜 군사독재의 억압을 뚫고 노조가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던 5공 말기, 한 조선소의 노사협상 자리. 노조위원장은 갑자기 발을 협상탁자 위에 올렸다. 사용자 쪽이 무례한 행동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했다. 그러자 그 노조위원장은 발가락 사이의 때를 손가락으로 긁어내며, “당신들이 우리 노동자를 이 발가락의 때만큼이나 취급했냐”고 일갈했다. 유신과 5공 시절이던 1970~80년대에 노조는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그냥 노조와 민주노조다. 그 시절 그냥 노조는 말 그대로 노조의 일반적 형태였고, 민주노조는 특수하고 예외였다. 문제는 이 특수하고 예외였던 민주노조가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노조 본래의 정의에 충실한 일반적 노조였다는 것이다. 이 전도된 본말을 환치시키는 데에는 많은 비용과 희생이 따랐다. 거기에는 발가락의 때를 긁어내는 것 같은 파격과 무리도 포함됐다. 그런 비용과 희생, 파격과 무리는 꼭 10년 전 이맘때에 결실을 보았다. 95년 10월 민주노총은 강령·규약을 확정하고 정식으로 출범했다. 어용의 대명사였던 ‘노총’(한국노총) 체제를 무너뜨리고 한국 노동운동에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 노동운동 진영은 두 발목이 잡힌 채 허우적거리고 있다. 과거 민주노조를 건설하던 때의 희생과 비용은 되새겨지지 않은 채 당시의 파격과 무리만이 남아 조직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민주노총 고위 간부의 비리 사건에 책임지고 물러나던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일부 반대파들의 소란으로 사퇴 기자회견도 못했다. 올해 초 사회적 대화 재개를 위한 노사정위 복귀 여부를 결정하려던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반대파들의 소란으로 두 차례나 무산됐다. 당시 단상 위에서 난무하던 소화기 분말 세례가 유신 시절 동일방직 노조원들에게 퍼부어지던 똥물 세례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똥물 세례는 정권과 자본이 했다는 것이고, 소화기 분말 세례는 노동자들이 했다는 것이 차이일 뿐이다. 이런 파격과 무리는 현장에서 멀어진 이념투쟁, 정파투쟁에서 비롯된다. 노동운동 진영은 일부 소수의 움직임을 전체가 정파투쟁에 몰입한 것으로 평가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이 지적이 유효하려면 소수의 움직임과 의견은 ‘소수의 움직임과 의견’으로 기능하게 해야 한다. 또 노동운동 진영은 단위 노조와 그 조합원들의 이기주의에 다른 발목이 잡혀 있다. 이 역시 과거 민주노조 건설의 과실만 따먹은 결과다. 민주노동당의 한 의원은 한국 노동자 정치 진출의 고향이던 울산 북구 재선거의 기막힌 현실을 토로한다. “울산 북구에서 민노당 지지율이 높지 않은 것은 비정규직들이 대기업 노조와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문제 처리 과정을 보며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가 오히려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20% 남짓이다. 민주노총의 경우, 절반은 귀족 조합원이란 말을 듣는 대기업 노조와 공공노조 조합원이다. 이 때문에 노조원이라는 것은 노동자에게 특수신분이란 말도 나온다. 이 땅 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정규직을 양산한 것은 자본의 필요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유지하는 데 노조와 조합원들도 한몫 안 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비정규직을 양산한 것은 자본이지만, 그 해결은 결국 노동자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과거 민주노조를 건설하던 때 많은 선각적 노동자와 지식인들은 법외노조 등을 세우며 기존 노조의 틀을 깼다. 이제 다시 그때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오는 11월11일 민주노총 창립선언문 발표 10돌을 맞으며 나는 왜 자꾸 노조운동에 회의를 느끼는 것일까.정의길/사회부 행정팀장 Egil@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