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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31 18:11 수정 : 2005.11.01 15:32

홍경준 성균관대 교수˙사회복지학

세상읽기

가끔 나는 내가 진보인지 보수인지 헷갈린다. 〈조선일보〉를 거부하는 지식인 선언에 공감하여 1차로 서명했고,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바라며, 조세제도의 누진성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나는 진보인 것 같다. 그러나 또한 가족이 대단히 소중하며, 한국의 재벌체제가 긍정적 요소를 가진다고 믿고, 교육 평준화 정책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니 보수인 것도 같다. 그래서 갈팡질팡하는 나 스스로를 책망한다. 일관성 없이 이래도 되는지 하고.

종종 뵙는 어르신이 계시다. 식민시대에 태어나서 한국전쟁에서 인민군과 싸웠다. 산업화가 개시된 60년대부터는 수출전선의 맨 앞에서 고군분투했고, 80년대부터는 조그마한 회사를 시작했다. 그이는 자랑거리를 두 개 가지고 있다. 비록 보잘것없는 회사지만 사원들에게 주는 월급과 국가에 내는 세금을 단 한번도 빼먹거나 거르지 않았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자식들이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고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할 수 있고 자존심 지켜야 할 때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이 다른 하나다.

북한에 대해 치를 떨기에 금강산 관광은 통일된 후에나 가겠다고 하고, 훌륭한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 대해 연민하며, 노동조합의 행태가 한국 경제를 해친다고 믿는 그이는 보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나에겐, 어른이므로 밥값이나 술값을 당신이 내야 한다고 고집하는 그이와의 자리가 즐겁고 흐뭇하다. 독감 예방주사는 무료로 놓아주는 보건소에서만 맞으면서도 가난한 이웃을 위한 기부금을 쾌척하는 그이의 행동에 나는 감동한다. 친일 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후원금을 손녀의 이름으로 냈다기에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할아비가 손녀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라고 말하는 그이의 미소는 나도 저렇게 늙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노무현 정부와 북한, 노동조합은 우리 대화의 자리를 늘 어색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이가 ‘수신’과 ‘제가’를 위해 참으로 성실하게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기에 그이의 보수를 나는 마음 다해 존중하며, 때론 일리 있다고도 생각한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치고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없는 곳이 있겠냐마는 지금 이 땅에서 그것은 심각한 문제다. 서로의 차이를 좁히기는커녕 더욱 확대해가는 자기분열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러한 경우는 이념이 수신이나 제가에는 없고 ‘치국’과 ‘평천하’에만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수신이나 제가로 검증받지 않은 이념은 자칫 진정성과 성실함을 결여하기 쉽다. 그런 이념은 정치시장이나 이론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리는 상품으로만 떠돈다. 그걸 잘 이용하는 정치가나 이론가, 그리고 언론은 그 대가로 큰 수익을 얻기도 하지만, 그 대립은 우리 삶의 영역을 헝클어뜨려서 실제보다는 더 크게 세대·계층 간 차이를 증폭시키고 의사소통을 어렵게 한다.

수신이나 제가로 검증받지 않은 이념은 쉽게 생활과 분리되어, 병역 의무를 회피하는 보수와, 일상은 철저히 친미적인 진보를 낳는다. 그런 면에서 공범인 이들은 거기에 대해선 서로 모른 척한다. 이들은 서로의 진정성과 성실함을 신뢰할 수 없기에 차이를 확대해나가는 방법만을 이념에 대한 자기의 헌신성과 치열함을 보여주는 근거로 여긴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관용할 수 있겠는가.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대립이 점점 자주, 그리고 크게 증폭되어 나타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젠 진보와 보수 모두 부디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홍경준/성균관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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