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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1 17:32 수정 : 2005.11.0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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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은 전북 완주와 김제 경계에 있다. 근처 순창의 회문산이 아비산, 양산인 데 비해 모악산은 어미산, 음산이다. 산 정상에 어미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양의 바위가 있어 ‘모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동학혁명이 실패로 끝난 뒤 강증산이 이 산 자락의 동곡(일명 구릿골)에 들어와 여성이 주체가 되는 천지개벽인 음개벽을 주창한 데는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이다. 20대 초반부터 열렬한 동학당이던 증산은 당시 동학의 동세(動世) 개벽, 곧 무장혁명에 반대하면서 정세(靖世) 개벽을 주장했는데, 음개벽은 여성 중심의 변혁을 이르는 개념이다.

증산이 제자 김형렬에게 한 말은 음개벽이 남녀의 상생을 향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원한에 싸인 아낙들이 염주를 팍팍거리는 소리가 구천에 사무쳤으니, 장차 부인의 천지를 만들려 함이다. 하지만 다가올 세상은 여자들만이 아닌 남녀동권의 시대다.” 증산은 숨지기 전 증산교의 법통을 한 여성에게 넘겨준다. 1908년 1월, 전북 정읍의 동학꾼 후예 집에서 무당과 벌인 ‘천지굿’ 또는 ‘천지공사’라는 의식을 통해서다. 여성 가운데서도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배에 올라타 칼을 휘두르며 “천지대권을 내놓으라” 하고는 “모두 드리겠다”고 약속한다. 유교 경전 등 남녀차별을 정당화했던 모든 책들을 불태우면서 증산은 “네가 천지개벽의 주인이 될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증산의 셋째부인으로 들어간 이튿날 천지굿을 통해 천지대업을 이어받은 이 여성이 증산교 교주 고판례다. 그는 나중에 모든 여성, 나아가 모든 생명의 우두머리를 상징하는 ‘수부’라는 칭호를 얻었다. 고수부가 천지굿 3년 뒤 득도한 곳도 모악산 대원사였다.

고수부의 정음정양(正陰正陽) 사상은 여성만이 패권을 행사하는 모권사회로의 퇴행이 아니었다. 뭇남성까지도 아울러 해방시키는 포괄적 의미의 여성 주체 선언이었다.

김영철 논설위원 yc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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