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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1 17:38 수정 : 2005.11.01 17:38

신기섭 논설위원

아침햇발

지난해 1300만명이 외국 여행을 다녀오는 등 어느 때보다 세계와 우리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유학생과 여행객이 많이 찾는 캐나다도 요즘은 가깝게 느껴지는 나라다. 그런데 뜻밖에 우리가 잘 모르는 구석이 있다. 정치문화가 그렇다. 미국과 비슷할 것으로 여기기 쉽지만 영 딴판에 가깝다.

몇 해 전 만난 한 캐나다인은 “캐나다의 중도가 미국에 가면 좌파가 된다”는 말로 차이를 요약했다. 이는 과장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미국 공영방송(PBS)의 토론 프로그램에서 마크 킹웰 토론토대학 철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린 당신들과 다르다. 정치문화가 전혀 다르고 우리의 기본 가치도 확연히 구별된다.” 그는 지난해 11월 공영방송 〈시비시〉(CBC)가 벌인 ‘최고의 캐나다인’ 조사 결과를 사례로 들었다. 1등은 ‘의료보험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회주의 정치인 토미 더글러스(1904~1986)였다. 무상 의료를 자랑스런 성과로 여긴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 국민의 15%인 4500만명은 의료보험 없이 산다. 극빈층과 노인만 정부가 지원해주는 탓이다. 공공 의료보험은 기본이라는 생각이 선진국 가운데 유독 미국에선 통하지 않는다.

좌우 구별의 잣대가 오른쪽으로 한없이 기울긴 대한민국도 못지않다. 우리나라는 공공 의료보험이 있어도 의료비 가운데 공공지출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미국, 멕시코와 꼴찌를 다툰다. 그런데도 공공지출을 늘리자고 하면 이른바 보수 세력은 ‘사회주의 정책 하자는 거냐’고 맹비난한다.

한동안 복지를 물고 늘어지던 그들이 요즘 써먹는 게 ‘국가 정체성 위기’와 ‘문화 전쟁’이다. 한 ‘언론인’은 ‘수구 좌파’가 ‘혁명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그와 맞먹을 수 있는 전투적 투쟁 역량을” 갖추자고 절규한다. 날로 영향력이 줄어들어 고민인 ‘진짜’ 좌파들이 들으면 어떤 느낌일까? 웃지도 울지도 못하지 않을까 싶다. “급진좌파인 놈 촘스키와 하워드 진”의 책이 많이 번역된 걸 지적하며 문화 전쟁에서 보수가 졌다고 걱정하는 학자도 있다. “급진좌파 촘스키”가 얼마 전 미국과 영국의 유명 잡지가 벌인 인터넷 투표에서 최고 지성인으로 뽑힌 건 어떻게 봐야 하느냐고 묻고 싶다. 보수가 진 건 세계적인 현상이란 말인가?

이 땅의 보수 또는 우파는 왜 이리 균형을 잃은 걸까? 분단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중요한 것 하나가 국가보안법이라고 생각한다. 온 나라가 국가보안법에 짓눌렸던 시절은 물론이고 지금도, 그들은 마르크스 이름만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래서 옳든 그르든 현대 사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마르크스 사상을 완벽히 건너뛴다. 그러니 진짜 좌파가 누군지, 좌파와 우파의 차이가 뭔지 제대로 알 길이 없다. 자신들이 건너뛴 사상의 의미나 알까? 저명한 우파 학자인 이사야 벌린은 이렇게 평했다. “특정한 일부 결론들은 틀린 것으로 밝혀졌지만, 마르크스 철학의 중요성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그의 철학은 사회적·역사적 문제를 바라볼 때 이전과 다른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인간의 인식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기 위해서도 상대를 알아야 하는 법이다. 그러려면 국가보안법 철폐가 최우선이다. 이것이 우파들이 사는 길임을 그들이 깨닫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는 이 땅에 엉터리 좌우 구별을 바탕으로 한 ‘혁명 전쟁’, ‘문화 전쟁’ 대신 평화를 가져오는 길이기도 하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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