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1.02 19:46
수정 : 2005.11.0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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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무로 신이치 일본 교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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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창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10월17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외교뿐 아니라 일본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에 큰 문제가 있다. 9월30일 오사카 고등법원 판결은 총리의 공식 참배를 위헌이라고 인정했다. 이번 참배에서 일반인과 같은 사적 참배라는 연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반대해 방일 보류 자세를 보이던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외교책임자의 대화 통로는 열어두는 게 바람직하다”며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 안에서는 외국의 비판에 흔들리지 않고 참배를 계속하면 상대가 굽히고 들어온다는 견해가 힘을 얻게 됐다. 내년 9월 임기가 끝나는 고이즈미 총리는 8·15에 공식 참배해 재임기간 동안 해마다 참배했다는 선례를 남김으로써 다음 총리 등에 무언의 압력을 가할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화를 통한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한국 정부의 요청에 응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도 생겨났다. 야스쿠니를 대체할 무종교의 국립 전몰자 추도시설 건립을 추진하기 위한 초당파 의원연맹이 결성됐다.
이 시설에서 어떤 것을 상정할 수 있을까? 나는 10여년 동안 아시아 각지의 전쟁 유적이나 기념관, 전몰자 묘지 등을 찾아 다니고 있다. 거기에 서면 20세기 아시아의 대지가 ‘살육의 황야(킬링필드)’로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를 빨아들였는가 하는 섬뜩한 생각을 금할 수 없다. 물론 전쟁의 원인이나 그 기억의 의미는 다르다. 전사자의 위령이나 추도의 방식도 종교나 민속 문화 등에 따라 다르고, 거기서 받는 인상도 크게 다르다. 그렇지만 싱가포르·미얀마·타이 등에 있는 연합군 묘지에서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전사자의 묘비를 보면, 서구인들뿐 아니라 아시아·아프리카 등 서구 식민지 통치를 받던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데 놀라게 된다. 일본이 ‘아시아인의 해방’이라는 대의를 내걸어 싸운 전쟁에서 병사로 동원돼 희생을 강요당한 것은 다름 아닌 아시아인들이었다. 일본과 서구의 식민지 쟁탈전의 전장이 돼 현지인들은 큰 재난을 겪었다. 묘비명에는 국가를 위해 몸바친 남편이나 아들이 의무에 충실했다고 칭찬하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그 가운데 유일하게 그 지역 사람의 시선으로 쓰인 것이 있다. “곡물이 여물 무렵 낯선 병사들이 왔다. 그리고 그 뒤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전쟁으로 죽거나 다치는 것은 병사들이지만, 전쟁터에서 가장 큰 재난을 입는 것은 여성이나 노인, 아이들이다. 그럼에도 전몰자 묘지나 기념비에는 대부분 남성 병사만 모셔진다. 전쟁에 휘말려 숨진 사람들을 애도한다는 관점은 완전히 빠져 있다. 예외적인 것으로는 일본 오키나와현 마부니 언덕에 지어진 평화의 주춧돌이 있다. 그 비석에는 일본·한국·북한·중국·대만·미국·영국 등 국적을 넘어,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남녀 23만여명의 이름이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새겨져 있다. 물론 한국·북한 사망자의 이름을 새기는 것은 유족의 양해를 전제로 한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태도가 소극적인 만큼 추도시설이 어떤 것이 될지는 전망할 수 없다. 어떤 것이 되든 내가 아시아 각지 전몰자 묘지 앞에서 머리를 조아릴 때 생각했던 한마디만은 모든 정치가가 명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암살당한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1993년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한 오슬로 합의 때 한 연설이다.
“세상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전쟁 묘지는 인간의 생명을 존중해야 할 국가 지도자들의 실패를 기록한 침묵의 증언입니다.”
야마무로 신이치/일본 교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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