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1.06 18:03
수정 : 2005.11.0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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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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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놀이방에 맡겨둔 아이를 시간에 맞춰 데려가지 않는 ‘지각 부모’ 문제를 해결하고자 경제학자들이 한가지 실험을 했다. 월 납부금이 380달러인 한 놀이방을 골라 10분 이상 늦으면 3달러씩 벌금을 물리기로 했다. 결과는 의도와 반대로 나타났다. 지각 부모들이 갑절로 늘었다. 벌금이 잘못 책정된 탓이다. 한 달 내내 늦어도 벌금은 월 납부금의 6분의 1도 안 되는 60달러에 불과했다. 이제 부모들은 그 돈만 더 부담하면 느긋하게 자신의 일을 하며 아이들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게 됐다. 벌금을 내니 미안한 마음도 없어졌다. 지각할 때 받는 벌칙인 부정적 인센티브보다,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데서 얻는 인센티브가 훨씬 컸던 것이다. 미국 시카고대 교수(경제학)인 스티븐 레빗이 <프리코노믹스>란 책에서 소개한 사례다. 그는 사람은 모두 세상에 나오자마자 부정적인 것이든 긍정적인 것이든 인센티브에 반응하는 법을 배운다고 했다.
어수선하다. 부동산 투기 광풍이 서민들을 좌절에 빠뜨리고, 옛 안기부 도청 테이프(엑스파일)로 불거진 정보기관의 도청사건 파문이 온 나라를 뒤흔든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을 비롯한 삼성그룹 총수 집안의 변칙 증여와 삼성그룹 지배구조를 둘러싼 논란, 두산그룹 총수 집안의 형제싸움과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은 재벌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그런가 하면 대표적 벤처기업인 터보테크와 로커스가 분식회계를 한 사실도 적발됐다. 개발독재에 편승해 성장한 재벌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어야 할 벤처기업들의 이런 모습은 적잖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불량 먹거리 사건이 잊을 만하면 터지길 반복하더니, 최근에는 중국산은 물론 국내산 김치에도 기생충알이 검출돼 국민들의 식생활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과거에 저질러진 일이건 지금 벌어지는 일이건, 모두 사회의 공동규범이나 가치를 도외시한 반칙에서 빚어진 일들이다. 지나친 이기심이나 도덕 불감증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반칙에 대한 인센티브가 적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칙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반칙이 적발될 가능성과 그때 받을 비난이나 벌칙을 감안한 부정적 인센티브보다 훨씬 컸다는 얘기다. 법과 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반칙을 해도 별탈 없이 넘어간데서 온 학습효과도 작용했을 게다.
고대 중국의 현자인 순자가 주장한 성악설이나 애덤 스미스가 말한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들에게 눈앞에 이득이 보이는데 도덕적으로 행동하길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순자는 사람의 감성적 욕망에 주목하고, 그것을 방임해 두면 사회적인 혼란이 일어난다고 했다. 경쟁의 효용 못지 않게 도덕성을 강조했던 애덤 스미스도, 개인의 사적 이익 추구가 결과적으로 사회적 이익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공동규범과 조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반칙을 막으려면 걸맞은 제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개혁이라 하든 혁신이라 부르든, 핵심은 반칙에 대한 인센티브 체계를 제대로 갖춰 더는 반칙으로 우리 사회가 얼룩지지 않게 하는 데 있지 않을까. 때로는 전에 누리던 인센티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때로는 잘못 되긴 했지만 과거 관행이었다며 저항하는 계층도 있다. 그래서 진통은 있기 마련이다. 스티븐 레빗은 “인센티브는 상황을 극적으로 바꿀수 있는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무엇이 필요한지, 각 부문을 이끄는 이들이 귀기울여야 할 말이다.
김병수 논설위원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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