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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6 20:07 수정 : 2005.11.07 10:03

김용철 기획위원

김용철의법과세상

검사가 경찰관에게 수사지휘할 때 관용적으로 ‘죄질이 나쁘고 피해가 중대하므로 구속수사할 것’, ‘초범이고 피해자 처벌불원하므로 불구속수사할 것’이라는 문구를 쓴다.

가끔 ‘불구속수사 바람’이라는 경찰의 의견을 존중하는듯한 신사적 표현을 쓰거나, 경찰의 불구속수사 건의에 대해 ‘가’, ‘불가’라는 간결한 문구로 대꾸해주는 이도 있다. 재기가 넘치는 검사는 피해자의 사전 동의가 있어 강간죄가 안되는 사건에 대해 혐의가 없어 불구속수사하라는 표현으로 ‘움직이는 바늘에 실 꿰랴’고 써보내기도 했다. 남편의 돈을 훔쳐 죄가 안되는 사안에서는 ‘주머니 돈이 쌈지돈’, 시비 끝에 가벼운 폭행 혐의로 입건됐으나 전과가 많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사건에 대해 ‘전과자는 울어야 하나요’란 광고 카피같은 문구를 쓴 것도 그 검사의 작품이다.

수사지휘의 문구는 국민생활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사소한 문제다. 요즘 검경 사이의 수사권조정 논의를 보면 비슷한 생각이 든다. 법률서적을 대한지 30년이지만 누구와 무엇을 위해, 또 도대체 뭘 조정하자는 것인지 이해가 안되니, 대다수 국민은 어떨까.

미국이나 일본에선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없다. 반면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선 검사가 경찰에 대한 강력한 지휘권을 갖는다. 이탈리아의 경우엔 판사가 수사를 맡기도 한다. 이를 보면 어느 쪽이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난 솔직히 건국 이후 우리의 사법제도가 국민의 기본권보호에 실패한 것으로 검증된 바도 없고, 실패할 것으로 예측되지도 않는데 왜 이 시점에서 개혁논의의 대상이 되는지 의아할 뿐이다.

어차피 논의가 시작됐으니, 경찰이 독자적인 수사권을 갖고, 또 검사로부터 지휘를 안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수사는 공개재판을 전제한 사법작용일 뿐이고, 공소유지와 판결의 집행은 어차피 검사의 몫이다. 따라서 수사를 맡은 이는 당연히 공소유지를 맡을 검사와 협의할 수밖에 없다.

수사권조정 논의가 경찰만이 범죄인지권인 수사권을 갖겠다는 쪽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수사는 경찰이 하고, 신병지휘만을 검사가 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 인권보호를 위해, 1천여명의 검사는 수사주체가 된 14만 경찰을 감시할 수 있는 더 강한 수사조직으로 재탄생돼야 할 것이다. 형사부 검사 모두가 특별수사부와 마약조직범죄수사부 검사가 돼야 하고 보조인력도 보강돼야 할 것이다.

국민은 검찰과 경찰 가운데 어느 쪽도 편들지 않는다. 다만 잘하는 쪽이 ‘우리 편’이고, 그 기준은 국민에 대한 봉사의 넓이와 깊이다.

김용철 기획위원/변호사 kyc03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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