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1.07 18:13
수정 : 2005.11.0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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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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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창피하다. 매우 창피하고 민망하고 부끄럽다.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일까만, 이번에는 중국, 일본, 아니 코리아산 웰빙푸드에 관심을 가져온 외국인들을 향해 범세계적으로 민망하다. 방금 와이티엔 속보에 과천 정부청사에서 ‘김치수출 긴급대책회의’를 연다는 기사가 떴다. 하이고, 두야!
우리는 왜 이리 매사에 경망스럽고 호들갑스러운 걸까. 한국형 호들갑의 프로세스는 이렇다. 먼저, 일단 한 건 하고 보자는 국회의원이나 시민단체에서 비장한 폭로를 한다. 언론은 그야말로 파블로프의 개처럼 무조건 조건반사를 하되 거기에 초를 치고 양념을 얹어 최대한 자극을 부풀린다. 심층적인 사실이야 알 바 없다. 인터넷에서 난리가 나고 사안의 희생자 증언이 줄줄이 따른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전국민이 갑자기 닭을 안 먹거나 냉장고의 만두를 버리거나 김치를 끊는다. 단, 끊고 버리는 기간은 다음 번 폭로에 자극받을 때까지만이다.
나쁘다고 끊는 심정은 그나마 이해가 간다. 언젠가 도심지 길거리에 두부장수가 늘어선 것을 보고 무슨 일인가 했다. 아, 방송에서 두부가 만병통치인 양했던 모양이다. 좋다는 보도 한방에 갑자기 두부를 과식하고 다시마를 편식하고 홍화씨를 갈아 먹고 또 뭔가를 찾아 헤매고…. 물론 다음 번 좋다는 것이 발표될 때까지만 거기에 열광한다.
가족 중에 내과의사가 있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건강 문제를 지나치게 먹는 것과 결부시켜 생각한다는 것. 섭식도 건강상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요즘 세태처럼 그렇게 과민증상을 보일 일은 아니라는 것. 그 말에 120% 동의하게 되는 것이, 6·25 때 아사 직전까지 굶주렸고, 60~70년대 카바이드 막걸리 따위의 불량식품에 찌들고, 80~90년대 패스트푸드에 절여진 사람들 대부분이 저승길은커녕 일흔 너머 여든, 아흔까지 장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 한번도 보신약재니 건강식이니 챙겨본 적 없이 평범한 서너 가지 찬에 밥이나 라면, 또는 찐빵을 주식으로 삼아온 내 가족은 아직 건강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 먹을 것에 열광하기에는 더 중요하고 흥미로운 일이 많지 않은가.
떠들썩한 이 김치파동도 잠시 후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출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으니까. 하지만 새겨두어야 할 숙제가 너무 많다. 우선, 흡사 중국산 회충알이 독극물이나 되는 듯 난리를 치다가 국산 회충알도 나왔다 하니 갑자기, 미성숙란이라 괜찮다더라 하는 식의 몰염치. 꼭 식약청의 어설픈 발표와 언론 반응만 문제삼을 것이 아니다. 먹을 것이라면 전국민이 일곱살박이가 되는 것은 아닌가.
여기에 또, 왜 외국이 개입되면 꼭 국가간 대항전의 성격으로 몰고 가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지금 김치를 놓고 중국이라는 나라, 일본이라는 나라와 에이매치를 치르는 게 아니다. 다만 김치 제조 과정의 위생관리를 두고 업자들을 채근할 일 아니겠는가. 처음 보도 때의 문면을 보라. 내가 중국인이어도 얼마나 불쾌했겠는가. 마치 중국산은 납 천지, 기생충알 천지처럼 느끼도록 모욕적으로 몰고 가지 않았던가. 제대로 된 조사 또는 보도였다면 특정 국가를 강조할 사안이 아니라 구체적인 업체를 추적해 비판했어야 옳다.
반기문 외무장관은 이틀 전 외교관이란 총 없는 병사와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외교관도 병사도 아니다. 다만 우연의 결과로 국적이 다르거나 피부색과 언어가 다를 뿐 한 하늘을 이고 사는 인류라는 이웃이다. 더욱이 김치까지 나누어 먹는 사이 아닌가.
김갑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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