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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7 18:17 수정 : 2005.11.07 18:17

유레카

두 명의 이주 노동자의 죽음으로 촉발된 폭력시위 사태로 프랑스가 혼란에 빠졌다. 1968년 ‘5월 혁명’ 이후 최대 규모라는 이번 사태는 여러 면에서 68년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해는,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미군에 대한 ‘설날 대공세’를 펼쳐 한때 사이공 미국 대사관까지 점령하는 충격으로 시작했다. 곧 이어 온세계 학생과 민중들이 각국 정부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동·서 유럽 각국부터 파키스탄·일본·브라질에 이르기까지 ‘반란’은 들불처럼 번졌다. 주장하는 바는 서로 달랐지만 그들은 어쩌면 ‘패배자 미국’의 모습에서 기존 권력 전체의 붕괴 가능성을 엿봤는지도 모른다.

이 운동의 중심은 프랑스였다. 3월22일 파리 북서부에 있는 낭테르대학에서 부실한 교육 여건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는 곧 진압됐지만, 불씨마저 꺼지지는 않았다. 독일 유학생 다니엘 콘벤디트 등 이 운동을 주도했던 학생들이 5월3일 파리 소르본대학으로 진출한 것이다. 정부는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소르본대학을 폐쇄했지만, 사태는 수그러들 줄 몰랐다. 실업과 빈곤, 무능력하고 폭력적인 정부에 분노한 노동자와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사태는 6월까지 이어졌다. 콘벤디트의 말을 빌리자면 이 반란은 “기존 사회에 맞선 모든 세대의 봉기”였다. 영국의 사학자 에릭 홈스봄은 “정치가들은 알 수 없을지 몰라도 우리는 사람들이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소비 사회에서 무가치한 것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지만, 요즘 프랑스 상황은 그 당시와많은 면에서 비슷해 보인다. 이라크전쟁의 수렁에 빠진 미국, 연정 구성도 못하는 독일 등 다른 나라 상황도 별로 나을 게 없다. 그 무엇보다 똑같은 건, 시위가 어디로 어떻게 번질지 누구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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