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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8 18:12 수정 : 2005.11.08 18:12

박범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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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노동자들의 저항으로 시작된 프랑스 사태가 좀처럼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불법 시위에 강경대처한다는 자세를 고수하고 있지만, 단호함만으로 이번 사태가 해결될 것으로 낙관하기는 어려운 듯하다. 프랑스 이주 노동자들에겐 실업과 불투명한 장래라는 개인적 차원의 불만이 아니라 뿌리깊은 민족적 차별, 그러한 차별로부터 구조화된 실업, 그리고 박애로 상징되는 프랑스에서조차 하나의 국민으로 동화되는 걸 거부당한 채 ‘제2의 국민’으로 찍힌 낙인…. 요컨대 이번 사태는 우발적이라거나 단순한 불만의 표출로 갈무리되기에는 그 한계선을 이미 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대성’(solidarity)에서 서구 유럽의 어느 국가보다 우월성과 자긍심을 가진 프랑스에서 왜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일까. ‘시민성’(citizen)으로 표현되는 프랑스의 박애의 범위가 이질적인 ‘민족성’(racism)을 포괄하는데 한계에 봉착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고, 무분별한 이주 노동자의 유입이 프랑스 문화와 충돌하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어떤 견해이건 그것이 현 사태의 다양한 근원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주 노동자들의 저항과 그 확산 과정, 프랑스 정부 대책의 단순성 등을 통해 볼 때 그 이면에는 정작 자본의 노동 유연화 요구가 깔려 있다. 198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의 바람에 프랑스도 자유로울 수 없었고, 자국내 기업 및 다국적기업의 노동시장 유연화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주로 3디업종을 근간으로 하는 제조업 등에 값싼 이주 노동자들이 들어오게 되었고, 이는 곧 프랑스 노동시장 안에 저임금 비정규직의 존재와 실업을 일상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주 노동자 계층의 불안정한 생활은 고스란히 이들을 낮은 사회적 지위와 프랑스 문화의 변방인으로 자리잡게 했다. 주로 기피직종에서 일했던 이들의 전력은 프랑스 사회에서 이들의 노동의 질과 가치를 저평가하는 일정한 흐름을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이들을 프랑스 사회의 다른 계층과 구분짓는, ‘게으르고 열등한’ 집단을 상징하는 하나의 ‘표지’로 작동하게 하였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점은 프랑스 사회 안에서 이주 노동자들에게 부여한 이러한 차별 표지가 이성과 객관의 산물이 아니라 감정과 편견의 낙인이라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이들에게 프랑스편 배와 항공기를 타게 하였지만 수준높은 문화적 자긍심이 면면히 흘러내리는 프랑스 문화 안으로의 진입은 거부하였다.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무엇이건 간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근로자는 인격적 가치를 가진 존재이고, 당연히 자신이 정착한 대지위에 형성된 문화를 동질적인 구성원으로 향유할 것을 요청하리라는 점을 신자유주의의 타성에 젖은 프랑스의 박애와 연대성은 간과한 것이다.

이제 시선을 안으로 돌려 우리에게 되물을 차례다. ‘코리안드림’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이주 노동자와 불법체류 노동자들은 과연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최대한 활성화한 뒤 산타클로스의 선물보따리를 짊어메고 자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낙인을 달고 문화적 동화를 거부당한 채 우리나라에 남아 불신과 반목의 응어리를 수십 년 간 키워갈 것인가. 분명한 건 우리의 이주 노동자와 불법체류 노동자들은 프랑스보다도 훨씬 열악한 근로 조건과 법적 조건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박범영/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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