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1.08 18:14
수정 : 2005.11.08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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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립 경성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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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이 35%까지 떨어졌다. 워터게이트 추문으로 물러난 닉슨을 빼면 현직 대통령 지지율로는 사상 최저다. 대통령직 수행에 대한 불만족도가 60%를 넘었고, 특히 정직성과 같은 인격 항목에서 신뢰도가 추락했다. 이 때문에 항상 절반을 웃돌았던 대 테러전 지지율마저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이라크의 미군 전사자 2천명 돌파, 허리케인 카트리나, 마이어스 대법관 지명 등과 같은 정치적 악재도 악재지만, 결정타는 백악관과 주변 측근의 비리와 범죄다. 미국 여론은 정치적 꼼수와 협잡을 가장 혐오한다. 레임덕 이야기가 벌써부터 나오는 것도 꼼수와 협잡으로 백악관의 도덕성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달에는 부시 대통령의 최측근이며 정치 추문계의 톱스타로 군림해온 톰 딜레이 하원 공화당 원내 대표가 드디어 선거 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퇴출되었다. 또 ‘리크 게이트’ 혐의로 조사 받고 있는 백악관의 최고 정치참모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사임 직전의 상황에 몰려 있고, 사상 최강의 부통령 딕 체니의 분신인 부통령 비서실장 루이스 리비는 같은 혐의로 기소되어 이미 사임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이 된 ‘사담 후세인의 우라늄 구입’ 첩보가 허위라고 폭로한 조셉 윌슨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미 중앙정보부 요원인 윌슨 부인의 실명을 일부러 언론에 흘린 이 추문은, 비밀 요원의 신분 공개를 금지한 실정법 위반도 위반이지만 그 보복의 비열한 방법 때문에 여론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최악의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체니 부통령은 그의 새 비서실장에 데이비드 애딩턴을 임명했다. 체니의 수석 법률 보좌관인 그는 체니가 국방장관직에 있던 십 수 년 전부터 체니의 그림자였다. 따라서 그의 기용은 칼 로브의 입지마저 위협받는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몰린 백악관의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달리 보면 이것은 대 테러전에 관해서만큼은 레임덕이나 양보가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미국 안에서도 애딩턴의 기용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애딩턴은 테러 혐의자에 대한 고문을 앞장서 정당화하면서 전쟁포로에 대한 비인도적 처우를 금지한 제네바 협약을 외면해온 초강경파다. “테러 혐의자에 대한 고문은 정당하다”는 내용으로 문제가 되었던 2002년의 백악관 비밀 메모도 애딩턴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는 악명 높은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에 설치된 테러혐의자 전용(?) 군사법원을 기획한 장본인이다. 문자 그대로 민간인을 철저히 배제한 ‘군대 법정’을 기획하고, 테러 혐의자에 대한 무죄 추정 원칙마저 거부하는 애딩턴이야말로 <뉴욕타임스>의 말처럼 “외국인의 테러에 대한 미국의 법 전략을 마련한 가장 중요한 인사”로 공인된 인물이다.
최근 미국의 테러범 수용소가 동유럽에도 있다는 의혹까지 나왔다. 미 국방부의 중견 간부들은 포로 고문에 반대하고 있다. 미 상원은 미 국방부의 ‘취조 지침’에 포로에 대한 비인도적 처우 금지 조항을 넣도록 요구한 국방예산안 수정안까지 통과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체니가 애딩턴을 선택했다는 것은 테러에 대한 초법적 대처에는 변함없다는 뜻이다. 애딩턴 기용에 눈길이 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즉 북한 문제를 대 테러 전쟁의 틀 속에서 해결하려는 미국이니만큼, 공을 일단 대북 협상파로 넘기기는 했지만 체니의 입김이 여전히 큰 것이 북핵 문제다. 그렇다면, 위기를 맞아 오히려 ‘더 강경해진’ 백악관이 제5차 6자회담으로 속개될 북핵 협상의 향후 추이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궁금한 것이다.
권용립/경성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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