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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9 19:09 수정 : 2005.11.09 19:09

신상훈 방송작가

야!한국사회

선생(先生)…. 먼저 선, 날 생. 먼저 태어나 앞서가면서 ‘이리 와라’ ‘저리 가지 마라’ 가르쳐 주는 분들이다. 이 노래가 기억 나지 않는가? “앞에 가는 사람은 선생, 뒤에 가는 사람은 학생….” 그런데 요즘 ‘교원평가제’와 관련한 뉴스를 보면 선생님들이 뒤처지는 느낌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교원평가제는 꼭 시작해야 한다.

20년 전 대학 때, 시위로 인해 군대로 끌려간 후배의 뒤를 이어 학생회장직을 맡았다. 당시는 학내 문제보다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던 시절이지만 학내 문제도 심각하여 우리 과에서 처음으로 교수평가제를 실시했었다. 학기가 끝나는 날 강의에 대한 만족도를 객관식으로 조사해, 통계를 낸 뒤 대자보로 붙였다. 당시 교수들 대다수가 볼멘소리를 하였지만 외국에서 유학을 하셨던 분들은 이해를 해줬다. 몇 해 째 똑같은 노트를 들고 똑같은 톤으로 읽고 계신 교수라면 교수평가제가 괘씸해보였겠지만, 그로 인해 이듬해에는 새 노트를 들고 오신 것만 봐도 작은 변화는 있었다.

위인전이나 감동 스토리를 읽다 보면 한 선생님에 의해 인생이 뒤바뀐 이야기는 무수히 많이 있다. 미국의 한 사회학과 교수가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빈민가로 가서 청소년 200명을 조사한 뒤 리포트를 제출하라는 숙제를 줬다. 각자 맡은 청소년을 조사한 뒤 학생들이 내놓은 리포트는 한결같이 “이 아이들에겐 전혀 미래가 없다”는 것이었다. 25년이 지난 뒤 다른 사회학과 교수가 이 리포트를 접한 뒤, 학생들에게 이들 200명의 청소년을 추적해서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조사하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타지역으로 이사간 20명을 제외한 180명을 조사한 결과 176명이 대단히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의 직업도 의사나 변호사, 교수 등 상류층이 많았다.

교수는 놀라서 한 사람씩 만나봤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대답은 모두가 한결 같았다. “여자 선생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교수는 아직 생존해 계신 그 여자 선생을 만나 물어봤다. “어떤 특별한 교수법을 사용하셨나요?” 그의 대답은 “난 그 아이들을 사랑했답니다”였다.

우리 교육계는 고인 물과 같다. 정열과 소신을 갖고 출발한 새 교사도 “나도 왕년엔 다 그랬어”라며 열정을 꺾어놓는 다른 교사들 때문에 2~3년만 지나면 같이 썩어간다. 가장 혁신이 필요한 곳이 교육계라고 교사들 스스로 말하지만 자신들이 변하기는 싫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교원평가제’를 반대하고 있지만 변화가 없으면 물은 썩기 마련이다. ‘체인지’(Change)가 ‘챈스’(Chance)란 말도 있지 않은가. 일단 먼저 시작하자. 선생은 앞서가야 하지 않는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내성적이었던 나를, 복도에 앉아 아이들과 공기놀이를 하던 담임 선생님이 불러서 끼워주셨다. 그 선생님은 아이들 일기를 매일 읽으며 답글을 달아주느라 점심을 걸러 위장수술까지 받으셨다. 그 분이 하신 말씀 한마디가 지금도 기억난다. “몇십 년 뒤엔 말이야, 책처럼 각자 좋아하는 이야기를 텔레비전으로 골라 보게 될 날이 올 거야.”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를 고르다가 그 말씀이 갑자기 떠올랐다. 텔레비전 방송 일을 하는 나의 현재가 그 분의 말씀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박주원 선생님. 33년이 지난 지금 늦게나마 당신에게 점수를 매겨 봅니다. 당신의 성적은 만점입니다.”

신상훈/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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