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11.09 19:57 수정 : 2005.11.09 19:57

조홍섭 편집국 부국장

조홍섭칼럼

지난 2일 방폐장 주민투표 결과를 지켜본 산업자원부 관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9년 묵은 난제가 풀려서만이 아니었다. 원자력발전소로부터 거리가 가장 가까운 경주가 선정됐기 때문이다. 만일 다른 곳의 찬성률이 더 높았다면 경제적 부담과 위험이 따르는 방사성 폐기물의 장거리 수송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번 선정에서 주민의 수용성이 관건이었지 터 요건은 부차적이었다. 크게 문제가 없는 곳이라면 어디에 짓든 안전성은 보장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자신감이다. 정부 홍보물을 보면, 중저준위 방폐장에서 나오는 방사선 영향은 텔레비전을 하루 두 시간씩 매일 보는 것과 같다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안전한 시설이라면 원전 터 안에 임시저장고를 몇 채 더 짓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마치 2008년이면 방사성 폐기물이 흘러넘쳐 원전이 가동을 못하게 될 것처럼 몰아칠 일은 아니었다. 정부가 노린 것은 방폐장 건설의 문턱을 넘자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물꼬를 터야 정작 중요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터를 찾을 수 있고, 나아가 원전의 계속 지어나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백상승 경주시장도 중·저준위 방폐장 터 유치에 성공한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월성원전에 보관 중인 전국 저장량의 절반이 넘는 사용후 핵연료를 다른 곳으로 내보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재처리를 하지 않는 한 사용후 핵연료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된다. 중·저준위와 고준위 폐기물을 분리한다는 원칙 때문에 법적으로 경주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고준위 방폐장이 들어설 수 없는 곳이 됐다. 그렇다면, 이제 정작 중요한 고준위 방폐장은 중·저준위 처분장보다 덜 안전하고 주민 수용성이 떨어지는 곳에 들어가야 할 판이다.

사용후 핵연료란 원전에서 몇 해 태우고 난, 아직도 방사능이 강한 물질이다. 그 위험성을 미국 핵규제위원회는 “원자로에서 꺼낸 지 10년 된 핵연료에서 1m 떨어진 곳에 한 시간 동안 서 있으면 치사량보다 4배 많은 방사선을 쪼이게 된다”고 설명한다. 모든 핵폐기물 방사능의 99% 이상이 사용후 연료에 들어있다. 게다가 여기에 들어있는 일부 방사능 핵종은 분해되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려, 적어도 10만년을 환경으로부터 완벽히 격리시켜야 한다. 몇 십 년 동안 열과 방사능을 낮춘 뒤 땅속 깊은 곳에 유리로 가둬 처분하자는 연구가 지난 반세기 동안 진행돼 왔을 뿐, 선진국에서도 고준위 방폐장을 만든 곳이 없는 것은 이런 어려움 때문이다.

주민을 설득하는 일은 더 어렵다. 이 시설을 받아들였을 때 후손까지 안전하게 잘 산다는 확신과 자발성이 없이 반영구적인 혐오시설을 받아들일 주민은 없다. 그래서 독일과 스위스의 추진원칙 가운데 하나는 번복 가능성이다. 마을·주·연방 등 모든 단위에서 주민의 동의가 필요하고, 문제가 생기면 앞 단계로 돌아가 다시 논의한다. 대책 없이 지루한 과정이다. 하지만 핀란드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고준위 처분장 터를 확보하기까지 중립기관이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데 17년이 걸렸다. 일본·독일·영국·프랑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 수십년의 기초연구와 끈질긴 사회적 합의과정을 거쳐 2020~2030년을 목표로 고준위 방폐장 터를 찾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필요한 법과 조직 마련은커녕 사용후 연료를 폐기물로 처분할지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2016년이면 사용후 핵연료 임시저장고가 포화된다”는 말을 되뇌이고 있다. 결국 다음 정부의 일이 되겠지만, 졸속이 불보듯 뻔하다. 이런 방식으로 고준위 방폐장을 얻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조홍섭 편집국 부국장 ecothink@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