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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10 17:42 수정 : 2005.11.10 17:43

유레카

“침묵의 세상을 깨고 당당한 역사의 주인으로/ 내일의 해방을 위해 오늘은 피에 젖은 깃발을 올려라.”

옹근 10년 전이다. 1995년 11월11일 아침이었다. 연세대 교정으로 눈빛 맑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전국 곳곳에서 모인 그들은 마침내 선언했다. 전국 민주노동조합 총연맹의 창립을. 선언문의 마지막엔 그날의 감동이 녹아있다. “자! 자본과 권력의 어떠한 탄압과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전국 민주노동조합 총연맹의 깃발을 높이 들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이 보장되는 통일조국, 민주사회 건설의 그날까지 힘차게 전진하자!”

민주노총. 기나긴 싸움의 열매였다. 일본 제국주의 침탈에 맞서 이땅의 노동운동은 싹텄다. 노동 해방과 더불어 민족 해방의 과제를 처음부터 부여받았다. 해방 뒤도 마찬가지였다. 이승만의 민간독재든, 이어진 군부독재든 노동탄압은 가혹했다. 87년의 노동자 대투쟁 뒤에도 변함이 없었다. 노래 ‘민주노총가’는 그래서 외쳤다. “오늘은 피에 젖은 깃발을 올려라.”

11월11일에 깃발을 올린 까닭은 그 주에 전태일의 기일이 있어서였다. 전태일. 1970년 자신의 몸을 살랐다. 생전의 그가 조직한 모임이 있다. 바보회. 그가 붙인 이름이다. 지금은 바보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깨쳐서 바보로 남지 말자는 뜻을 담았다. 소박하지만 날카롭다. 35년이 지난 오늘, 민주노총이 깃발을 든 지 10년을 맞은 오늘, 노동운동이 흔들리고 있어 더 그렇다.

딱히 민주노총 조합원만이 아니다. 언제 계약이 끝날지 모르는 비정규직만도 아니다. ‘바보’ 전태일은 2005년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준엄하게 묻고 있다. “지금 바보처럼 살고 있지 않은가?” 일찍이 정도전은 갈파했다. “노동을 하면 착한 마음이 나고, 편안하면 교만한 마음이 일어나는 게 인간이다.” 찬찬히 톺아보고 싶은 아침이다. 우리 너무 ‘편안’하지 않은가.

손석춘 논설위원 s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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