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1.16 18:50
수정 : 2005.11.1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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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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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칼럼
사태는 10월27일 북아프리카계 청소년 두 사람이 경찰의 검문을 피하다 감전사한 사건으로 촉발되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톨레랑스 제로’를 적용하고 있는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쓰레기’ 발언이었다. 20일이 지나면서 사태는 진정되고 있으나, 우파 정부는 아직도 매일 200여 대의 자동차가 불타고 있다면서 ‘비상사태’를 3개월 연장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하원은 346 대 148로 이를 통과시켰다. 그동안 침묵을 지키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는데, <르몽드>가 사설에서 강하게 비판했듯이, 2007년부터 5만의 ‘자원 민간 서비스’ 일자리를 창출하여 청년 실업자들에게 사회 진출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말고는 새로운 내용이 없었다.
이번 소요 사태에는 역사적, 사회경제적 배경뿐만 아니라 정치적 요인까지 작용하고 있다. 두 청소년의 감전사와 사르코지의 발언은 북아프리카계 2세들의 ‘사회적 불만’이라는 시한폭탄을 터뜨린 뇌관이었다.
1945년부터 73년 석유파동까지 ‘영광의 30년’ 동안 프랑스는 이웃 독일과 함께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일손이 부족했던 프랑스는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옛 식민지로서 프랑스말이 통하기 때문이다. 통계는 60년대의 10년 동안에만 200만을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왔다고 말하고 있는데, 지금 소요를 일으키는 청소년들은 그 2세들이다. 사르코지 내부장관처럼 프랑스 사회에 쉽게 동화되는 동유럽이나 남유럽 출신들과 달리, 북아프리카계는 아랍 문화와 무슬림의 정체성을 강하게 유지한다. 따라서 프랑스 학교를 다닌 2세들은 ‘이중의 정체성’이라는 부담으로 사회·경제적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동안 프랑스의 산업구조는 바뀌었고 부모 세대들이 하던 일자리는 거의 없어졌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프랑스의 실업률이 10%를 넘어섰고, 고용에서 차별의 대상이 되기도 하면서 실업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었다. 그 위에 우파 집권 이후 신자유주의 영향 아래 사회적 약자들의 사회 추방을 막으려고 활동하는 지역사회나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국가보조금도 삭감되면서 그들은 차차 ‘게토에 버려진’ 존재가 되었다.
한편, 3년 반 전 대통령 선거 일차투표에서 자크 시라크 다음의 17%를 얻어 결선에 나섰던 극우 국민전선당의 장 마리 르팽은 시라크에게 82 대 18로 참패한 바 있다. 북아프리카계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정책을 주장하는 극우세력은 지금까지 프랑스 정치판에서 배제되어 왔지만 사회가 우경화될 때 우파 정치인이 18% 지지율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어렵다. 우파 진영에서 가장 강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 사르코지가 ‘쓰레기’ 발언을 한 배경이다. 때마침 상대적으로 온건한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가 우파의 새로운 별로 떠오르고 있다. 두 사람은 지금 52~53%의 엇비슷한 국민 지지율을 얻고 있는데, 1년 반을 앞둔 대통령 선거와 관련하여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번 소요 사태는, 노동총동맹(CGT) 베르나르 티보 위원장이 말했듯이 교외지역, 이민, 청소년의 위기라기보다 ‘사회적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가 불타고 있는데, 그만큼 프랑스 사회가 병들었다는 표시다. 사회통합은 정치인들의 행동 없는 말에 채찍을 보탠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질병으로 열이 오를 때 해열제로 열을 내린다고 치료되는 게 아니라 병의 근원을 없애야 한다는 이치는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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