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1.16 18:52
수정 : 2005.11.16 18:52
유레카
언제부턴가 도덕적 해이(모럴 헤저드)는 익숙한 말이 됐다. 원래는 보험산업에서 유래했다. 화재보험 가입자의 행동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보험 가입 뒤에는 화재 예방에 소홀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화재 예방에 드는 비용은 주머니에서 나가지만 화재로 인한 손실은 보험사에 떠넘기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희생 대가로, 또는 법과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회주의적 행위는 물론, 권한은 누리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행위까지도 포괄하는 대중 용어로 자리잡았다. 도덕적 해이는 계약 당사자간 비대칭적 정보 탓에 생긴다고 한다. 예컨대 주주와 경영자 사이를 보자. 둘 사이에는 명시적이든 아니든 대리계약이 맺어져 있다. ‘본인’과 ‘대리인’ 관계라고 부른다. ‘대리인’은 ‘본인’을 위해 성실히 일하기로 암묵적으로 약속이 돼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길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보 차이 때문에 ‘본인’은 ‘대리인’이 속이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국민과 공직자 사이도 마찬가지다.
뇌물 챙긴 공직자, 회삿돈으로 비자금을 만들어 개인 용도로 쓴 재벌 총수, 자회사를 마구 설립해 퇴직 임직원을 앉히는 공기업, 정부의 연구 지원금을 주식투자와 자동차 구입에 썼다가 구속된 대학교수 등 도덕적 해이 탓에 언론의 도마에 오른 최근 사건만도 손꼽기 어려울 정도다.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한국과 동남아의 외환위기를 정부와 금융기관·대기업의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된 금융위기로 규정하기도 했다.
하나로텔레콤 경영진이 직원들은 대거 강제로 퇴직시키면서 자신들은 스톡옵션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스톡옵션은 전문경영인의 도덕적 해이를 줄이고자 도입된 제도다. 그런데 경영인들이 스톡옵션을 통해 더 큰 부를 챙기려고 또다른 도덕적 해이를 보이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김병수 논설위원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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