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11.17 18:06 수정 : 2005.11.17 18:06

윤철홍 숭실대 법대 학장

기고

‘조상 땅 찾아주기 사업’을 통해 이른바 을사오적 등 친일파 후손들이 110만평의 땅을 찾은 것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들이 보유한 토지의 가치는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최근 발표된 한 연구를 보면, 친일파 후손들의 토지는 대략 1억평에 이른다고 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친일파 후손들의 토지환수 소송은 토지 브로커와 변호사 등의 역할도 적지 않았으나, 법적인 측면에서는 1983년부터 1992년까지 시행된 ‘수복지역내 소유자 미복구토지의 복구등록과 보존등기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의해 크게 자극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시작된 소송은 현재 30여건에 이른다. 또, 이들 소송은 대부분 원고 승소판결로 이어지고 있다. 친일파 후손들은 거액의 재산이 걸려 있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증거를 찾고 연구하는 반면,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피고 쪽인 법무부 장관은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부의 미온적 대처보다는 법원의 사법 소극주의와 법실증주의적 사고가 더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친일파 후손들의 소송 행위가 부적법하거나 정의롭지 못하지만, 법률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권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법원 판결의 주된 논지였다. 이에 대해 우리 헌법 전문이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선언하고 있고, 헌법과 법률의 해석지침이 되며, 헌법기관과 국민이 지켜야 하는 가치규범이라는 점 등을 인정하여 원고패소판결을 내린 1심 법원도 있었으나, 항소심에서 이를 부정하였다. 항소심이 이것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헌법재판소에 이들 법 원리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어야만 했다. 이러한 제청이 없었던 것은 국가 공동체에 대한 의무위반이라 여겨진다.

지난 15일 수원지법이 “헌법정신을 구현해야 하는 법원이 반민족행위로 취득한 재산의 보호를 구하는 것은 부적법하다”고 판결한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이후 재판의 귀추가 주목된다. 그러나 항소심이나 대법원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바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설령 법원이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더라도 법원 판결만으로 친일파 후손들의 토지환수 소송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친일파 이해창 후손의 소송에서 피고인 봉선사가 지난 8월 서울중앙지법에 낸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이 매우 의미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헌재가 법률의 부재와 민법의 적용이 헌법 전문의 정신에 반하는지 여부를 명확하게 결정한다면 사법적인 문제는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것은 국회에 제안되어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에 관한 특별법(안)’을 심의·의결하는 일이다. 국회는 ‘반민특위법’말고는 지난 수십년 동안 반민족행위자들의 재산권 제한에 대한 어떤 법률도 제정하지 않았다. 법원이 민법의 원리에 따라 반민족행위자들의 재산을 보호하면서, 그것이 헌법의 평등권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것도 근본적으로는 국회의 이런 직무태만에서 비롯한다. 그 결과, 보호할 가치가 없는 재산을 헌법의 이름으로 보호해 주는 격이 되었고, 이것은 입법의 부작위로서 국회가 스스로 헌법을 위반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위헌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친일파 후손들의 토지환수 소송에 대해 근본적이고 합법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시급히 특별법을 제정하는 길뿐이다.

윤철홍/숭실대 법대 학장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