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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20 18:27 수정 : 2005.11.20 18:30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과

야!한국사회

결혼 9주년을 기념해 몇 달 만에 영화를 하나 보고 들어오는 길에 “교복 입은 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폭력영화를 규제하겠다”는 여당 의원의 발언이 화제에 올랐다. 나는 단호하게 그게 말이 되냐며, 바보같은 소리라고 말했다. 중고생들이 ‘교복 입은 폭력배를 멋지게 그린 영화’를 보고 폭력배가 된다면, 10년이 넘게 받은 교육은 모두 헛된 것이라고 말했다. 아내는 영화나 게임, 만화 등 대중문화가 너무 폭력적으로 변했다면서, 돈 벌 궁리만 하지 말고 자신이 만드는 문화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책임의식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의 과도한 폭력 표현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가는 누구도 딱 부러지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문제다. 하지만 표현의 정도에 따라 적절한 ‘분리’는 당연한 것이어서, 우리나라도 영상물은 등급제를 활용하고 있고, 출판물은 성인용을 따로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14일 정부와 여당은 “창작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폭력적 내용을 규제하겠다”는, “술을 먹고 운전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와 맞먹는 고도의 수사를 구사했다.

정부와 여당이 문제가 있다고 예시한 작품은 18살 이상이 보도록 청소년에게서 이미 ‘분리’된 작품이다. 문제는 급변한 미디어 환경에서 분리가 큰 역할을 못한다는 점이다. 영화나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의 정보는 성인과 청소년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유통된다. 크게 히트한 작품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넘치는 정보는 청소년들을 유혹하고, 유통단계에서 분리는 취약하며, 어둠의 경로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다. 장벽을 더 튼튼하게 쌓아 분리하면 막아낼 수 있을까? 전형적인 장벽 쌓기 법안인 청소년보호법을 강화할 때가 된 것인가? 그래 봐야 소용없다. 미디어는 디지털 시대를 맞이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고, 늘어나는 미디어에 능숙한 것은 어른들이 아니라 청소년들이다. 분리를 고민하기 이전에 수용과 자정능력을 고민해야 한다.

아내에게 내 의견의 핵심을 전달했다. “단순한 규제보다는 미디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교육이 필요해.” 그러자 아내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아이들한테 그럴 시간이 있어?” 도대체 세상 물정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프로그램에 따라 바쁘게 길러진다. 성공을 위해서는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한다. 성공에 방해받는 요소들은 부모들에 의해 철저히 제거된다.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패거리를 만들어 기득권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이런 와중에 미디어 교육을 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약 미디어 교육이 입시에 도움이 되면 입시교육으로 변질되고, 내신에 영향을 미치면 별도의 과외가 나올 것이고, 이도 저도 아니면 유야무야될 것이다. 좋은 대학 하나로 인생이 결정되는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가능한 시도는 오로지 ‘규제’뿐이다. 정부 여당이 오죽 답답했으면 규제를 이야기했을까? 그러나 규제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아이들에게 자유를 허락해야 한다. 자유 안에 예술과 문화가 뛰어놀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좋은 문화와 좋지 않은 문화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교복입은 아이들이 폭력집단의 주인공인 영화가 무더기로 나와도 아무 일 없을 것이다. 나보다 훨씬 더 교육 문제에 정통한 분들이 왜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미디어나 규제하겠다는 뻔한 소리를 하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박인하/청강문화대 교수·만화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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