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1.20 18:29
수정 : 2005.11.20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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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희 건국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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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지난 9월 초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역법률가회의에 국제민주법률가협회 회장인 인도의 지텐드라 샤르마 변호사가 참여했다. 인도 대법원의 변론 자격이 있는, 70대의 간디 같은 외모를 지닌 정력적인 분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방문을 안내하면서 국가인권위원장이 어떻게 선정되는지 이야기하다가 판사를 그만둔 변호사의 개업 제한 문제에 대한 인도의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인도에서는 전직 대법원장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원장이 되는데, 그 이유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을 높여서 위원회의 결정을 다른 국가기관이 잘 따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대법관을 지낸 사람은 변호사 업무를 일체 할 수 없도록 했고, 고등법원 판사를 지낸 사람은 그 고등법원 관할 지역(22개 지역)에서는 근무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전관예우를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영국 식민지 지배 시대 이후 계속된 법제도를 발전시켜 참 합리적인 제도를 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 그는 성공보수 제도가 변호사의 영리추구를 촉진하는 아주 나쁜 미국식 제도이며, 비용이 많이 드는 로스쿨을 왜 도입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박시환 대법관이 다른 두 대법관보다 현저히 낮은 득표율로 국회 인준을 받았다. 야당이 이른바 ‘코드인사’를 들어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하지만, 박 대법관이 22개월이라는 짧은 변호사 활동 기간 동안 19억원을 벌었다는 점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사법개혁, 특히 법원의 개혁을 주장하면서 판사를 그만둔 사람조차 퇴직 뒤 단기간에 고액의 변호사 소득을 올리는 대열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는 사실에서, 시민단체가 오래 전부터 외쳐온 전관예우 관행의 근절에 절망감을 느끼게 한다. 물론 이번 경우는 박 대법관의 뛰어난 변론 능력을 보고 사건이 몰려든 것이니까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법정에서 어제까지 법대에 앉아 있다가 당사자를 위해 변호사석에서 변론하는 변호사들에게서 가끔 의아스러운 장면을 보게 된다. 재조에서 엄격한 형을 적용하고 재판 진행을 직권적으로 하던 사람들이 관용을 주장하고 준비 안 된 느슨한 변론을 하는 경우이다. 다 자신이 현재 처한 직분에 충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엄한 판사와 검사의 논리에 충실했던 사람이 변호사가 되었다고 해서 정반대의 입장이 되어버리면 이상하지 않은가 하고 순진하게 의문을 품어 본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종래와는 달리 다소 젊고 기력이 왕성한 분들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 들어갔다. 임기가 끝날 때도 그다지 많은 나이가 아닐 텐데, 그때 가서도 전관 변호사로서 활동을 하시려나 걱정이 된다. 전관 변호사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전관으로 인해 영향력을 끼칠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어떻게든 제한이 있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법조계에서 최고의 직위에 있었던 사람들이 전관으로서 일을 한다는 것은 그 가능성이 당연히 크다고 본다.
선거공약을 다 잊어버리고 당선된 이후 사정 변화를 강변하는 선출직 공직자들, 자유주의 이론의 교수이다가 정부 주도 통제를 설파하는 고위관료들, 야당 의원 시절과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여당 의원이나 장관 등과는 달리 법조계에서 입장 변화를 합리화하기에는 일의 내용이 너무 단순하다고 본다. 하루라도 빨리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
조상희/건국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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