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경준 성균관대 교수˙사회복지학
|
세상읽기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사회 양극화 문제의 심각성을 언급하며, 무역 자유화와 상관관계를 지적했다고 한다. 또한 회원국의 결단을 담은 ‘부산선언’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처하는 방안을 회원국들이 함께 연구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핵심적인 문제들의 앞자리에 양극화의 문제가 있다는 점은 대통령뿐 아니라 국민 또한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여론조사 결과들을 국민 상당수가 양극화를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경제의 일차적인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고, 언론들 또한 심심치 않게 양극화 이슈를 기획주제로 다루고 있다. 흔히 말하는 사회적 불평등?심화보다 사회적 양극화가 더 심각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 때문이다. 양극화는 중간이 양쪽의 극단으로 흩어짐을 말한다. 결국 양극화가 심화한다는 것은 양 극단을 구성하는 집단 사이의 이질성과 집단 내부의 동질성이 동시에 커진다는 것이고, 그 결과는 사회적 긴장과 갈등의 확산이다. 사회 양극화 문제는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지만, 그것이 파생하는 사회적 긴장의 크기와 갈등의 여파는 나라마다 상이한 것 같다. 그 결과인지 나라마다 사회 양극화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며, 모색하는 방안 또한 같지 않다.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나는 이 문제를 분배의 형평성을 저해할 뿐 아니라, 성장 잠재력도 약화시키는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또한 고용을 중심에 둔 사회정책의 구축, 특히 ‘사회 서비스 산업’의 발전이 한국의 사회 양극화 문제를 완화·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믿는다. 사회 서비스 산업의 발전은 비교적 양질의 고용을 창출할 뿐 아니라, 한국의 낙후된 복지체제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좀더 활발한 노동시장 참여를 격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복지와 건강, 교육, 그리고 일련의 돌봄 노동을 포함하는 사회 서비스 산업에 대한 정부나 시민사회의 발언에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회 서비스 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 방향이나 시민사회의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부는 사회 서비스의 발전을 주로 ‘사회적 일자리’의 확대와 관련하여 이해하는 듯하다. 이러한 점은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에서 드러난다. 정부 예산안을 보면, ‘사회적 일자리’ 지원 사업은 성장 동력 확충과 양극화 해소를 동시에 꾀할 수 있는 사업으로 인정되어 내년엔 올해보다 72% 늘어난 2909억원 규모로 확대된다. 확실히 말하고 싶은 것은 양극화 해소와 한국 복지체제의 전환에 필요한 것은 사회 서비스 산업의 발전이지 ‘사회적 일자리’의 확대는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몇년간의 경험으로 보면 한국에서 ‘사회적 일자리’는 노동시장 취약계층에게 제공하는 임시적인 일자리였다. 더욱이 대부분의 ‘사회적 일자리’는 시민사회를 통해 헐값으로 구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서 이와 관련한 사회 서비스의 전문성을 훼손하고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이는 사회 서비스 산업의 발전을 촉진하기보다는 오히려 저해할 수 있다. 정부의 재정보조에 의존해 ‘사회적 일자리’를 제공하는 시민사회, 특히 사회권의 옹호자나 대변자의 역할을 마음에 둔 시민사회는 좀더 신중해야 한다. 서비스 제공자의 역할과 옹호자 혹은 대변자의 역할은 엄연히 구별되기 때문이며, 정부 보조금에 대한 의존은 어렵게 쌓아온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정체성을 헐어버리기 때문이다. 홍경준/성균관대 교수·사회복지학|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