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1.24 17:58
수정 : 2005.11.2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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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소 전남 담양 한빛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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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지난 토요일 아침 문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토요일엔 청취자 의견을 많이 들어주는데, 이번에는 우리의 학교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얘기가 나왔다. 시험 보고 성적을 매긴다. 도서관 좌석은 100석. 학생들의 경쟁을 유발하기 위해 100등까지만 도서관 전용석을 준다. 빈자리가 있어도 101등은 앉을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00등까지의 전용좌석 청소를 100등에 끼지 못하는 학생들이 해야 한다.
얼마나 기가 막히고 속이 뒤집혔으면 이른 아침 방송사에 전화를 걸어 자녀가 다니는 학교를 고발했을까? 그러면서도 학교와 자녀를 정확하게 밝힐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분노와 좌절이 복합된, 설명하기 힘든 낭패감을 느꼈을 것임을, 자식 키우는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이 도처에서 수시로 일어나고 있는데,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왜 그냥 당하고만 있는 것일까? 학부모는 그런 천인공노할 반교육적 처사를 고발하고 학교를 징치하고 싶겠지만 그러지 않거나, 못한다.
감히 그러지 못하는 것은 자녀가 당하게 될 불이익 때문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학교를 졸업해야 하고 졸업하면서 유리한 학력고지를 점해야 한국 사회에서 생존하거나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당한 현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 부당한 현실에 편입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에, 속으로만 썩이거나 일회적인 사건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학교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다. 최소한 교육 현장에서 학교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넘을 수 없는 권력이다.
그 권력의 정점에는 교장이 있고, 교사들은 교장의 평가 대상이 되기 때문에 감히 학생들의 인권유린을 개선할 의욕을 낼 수 없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교장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면서도 정년을 보장받는 성역이다. 교장 4년 하다 정년이 많이 남아 있으면 다시 교육청에 들어가 몇 년 더 근무하고 나서 마지막 정년은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이런 교장들이 교사들에게는 전제적 권력을 휘두른다. 마음에 들지 않는 교사는 보직을 주지 않으며, 승진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런 교장들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들은 평정이 잘 나오고, 부당한 행정과 현실에 대해 비판의식을 발동하는 교사들은 승진의 기회가 박탈되고 만다. 교권은 교장에게만 있고 평교사에게는 없다.
여기에 100등 이내의 학생·학부모들과 100등 밖의 학생·학부모들은 이해가 상반된다. 기왕의 유리한 지위를 점하려고 부당한 조처를 외면하거나 명분만 동조하고 개선하기 위한 실천의 대오에서는 한 발 빼고 만다. 학교는 사회의 반영이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학교 현장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다. 혹 용 나도 그 용은 이미 개천을 떠나 개천 아닌 세력에 편입되고 마는 것이니, 개천에서 용 나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도 연대를 해야 개혁이 가능하다. 무능력하고 보신만 신경 쓰고 학생 인권에 관심 없는 교사들을 퇴출시키기 위해서라도, 지향점이 동일한 세력들이 연대해서 지향점이 없거나 지향점이 다른 세력들을 넘어서야 한다. 그래서 표면적 현상과 쟁점만 보지 말고 학교에 대해, 학교문화에 대해 정치한 분석이 필요하다. 학교 현실에 대한 정밀한 분석 없이 싸잡아 교사를 매도하는 것은 오히려 의식있는 교사들에게 좌절감을 줄 뿐이다. 그런 점에서 교원 평가가 이대로 진행되면, 우리 교육 현장이 더욱 황폐화질 것임은, 불행하나 사실이 될 것이다.
윤영소/전남 담양 한빛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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