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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24 18:23 수정 : 2005.11.24 18:23

유레카

20세기 전반까지 사람의 몸은 의료 연구의 ‘재료’에 불과했다. 히포크라테스 선언 등 의료 윤리의 발상지였던 고대 그리스에서도 죄수는 해부학 연구의 재료였다. 18세기 프랑스 파리의 임상학자들은 버림받은 환자들이 수용된 대형 병원을 생체실험장으로 이용했다. 19세기 미국에선 고아원 등 보호시설에 수용된 사람을 상대로 인체실험이 자행됐다. 워싱턴시는 20세기 초 인체실험 규제법안을 의회에 제출했으나 의사들의 조직적 반대로 무산됐다.

2차대전은 생체실험의 극성기였다. 독일과 일본 등 전범국은 말라리아·티푸스·황열병 등 세균 실험이나 가스 약물 실험은 물론, 초저(고)기압이나 초저(고)온 실험도 자행했다. 독일은 ‘나쁜 종자’를 제거하는 차원에서 정신 장애인과 다른 장애인 등에 대해 불임시술을 하거나 굶겨 죽이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국 쪽도 생체실험을 전쟁 수행의 일부로 간주했다. 미국에선 정신병동이나 감옥에 말라리아 균을 살포한 뒤 해독제의 성능을 실험했다. 1932년부터 시작된 ‘터스키기 매독 연구’는 미국 공중보건국에서 전후에도 계속했다. 실험 대상자는 400명의 가난한 흑인 남성이었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부는 47년 전범국이 저지른 생체실험에 대한 판결문을 통해 ‘허용 가능한 의학실험 10조항’을 발표했다. 의학사상 첫 인체실험 준칙이었다. 이후 세계의사협회는 의사의 문제를 의사가 해결한다는 차원에서 인체실험의 윤리적 조건에 대한 논의를 심화시켰다. 그 결정판이 64년 18차 총회에서 채택한 헬싱키 선언이다. 32개 조항으로 된 이 선언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의학 연구자들에 대한 권고’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헬싱키 선언은 ‘공익’을 핑계로 자행한 반인륜적 생명범죄에 대한 반성 위에서 성안됐다. 국가나 민족, 어떤 이유로도 그 정신이 훼손돼서는 안 되는 이유는 인간의 이런 범죄 가능성에 있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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