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11.27 18:18 수정 : 2005.11.27 18:19

김종휘 문화평론가

야!한국사회

이젠 ‘대한민국에서 남자 되기’의 거의 모든 시나리오가 영화로 다 나왔지 싶다. 알다시피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지는 남자 되기의 3대 경로는 군인 되기, 남편 되기, 아버지 되기다. 이중 군인 되기는 올해의 독립영화 화제작 <용서받지 못한 자>를 통해 ‘까라면 까는 우울한 순응’의 서글픈 풍경으로 그 성찰의 시선을 처음 선보였다.

군인 되기 영화가 거의 없었던 데 비해 남편 되기의 시나리오는 멜로나 코믹 드라마로 비교적 많이 다뤄졌던 편이다. 그중 시대적 징후를 포착한 문제작은 허진호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와 <봄날은 간다>(2001) 그리고 홍상수의 <오! 수정>(2000)부터 <극장전>(2005)에 이르는 시리즈물 영화를 꼽을 수 있다.

이들 영화의 남자는 한결같이 남편 되기에 실패한다. 아니 남편 되기를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허진호의 남자들이 스산한 삽화처럼 아버지를 끼어 넣으면서 아들 세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의 파편을 보여준다면, 홍상수의 남자들은 우연과 순간에 좌우되며 수작과 섹스에 휩쓸리는 관계의 바깥을 보여준다.

올해 개봉한 <너는 내 운명>과 <나의 결혼원정기>는 시효를 마친 남편 되기의 시나리오가 어느새 동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음을 역설한다. 농촌 남자의 절대 순수를 빌려 희구하는 남편 되기의 허구적 꿈조차 에이즈에 걸린 여성과 북한 출신 여성을 만나보지만 결과는 엉엉 울거나 헤헤 웃는 용해 상태다.

아버지 되기의 시나리오는 한층 가슴 아프다.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2002)과 <올드보이>(2003)와 <친절한 금자씨>(2005) 3부작에 나오는 아버지는 자식을 잃거나 자식과 섹스를 하거나 다른 자식을 납치해서 죽이고 있다. 극단적인 상실과 자학과 복수의 3중주에 몸부림치는 아버지의 자화상이다.

그런 아버지조차 앞으론 아예 자취를 감출 태세다. 개봉중인 <사랑해 말순씨>는 <바람난 가족>(2003)에서 예고된 대로 아버지 없이 어린 아들과 친구 같은 엄마의 이야기로도 얼마든지 풍족하다. <소년 천국에 가다>는 더 나간다. 미혼모의 아들로 자라서 미혼모와 결혼하는 남자. 남편 되기와 아버지 되기의 완전무결한 전복이다.

물론 이상은 전부 영화 이야기다. 그러나 이들 영화의 대다수 감독이 1960년대 출생이며 70, 80년대 청소년기를 보냈고 90년대에 영화를 시작해서 최근 10년 안짝에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공통된 연대기는 ‘대한민국에서 남자 되기’의 변치 않던 1번지 주소가 후미진 구석 저만치 밀려났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아니 그것은 중심에서 주변으로 쫓겨난 정도가 아니라 깨끗이 철거된 것일지도 몰라서 남자 되기의 3대 경로는 이미 파산 선고를 받은 것 같기도 하다. 해서 향후의 문제적 영화들은 남자 되기의 음산한 노후나 소년기의 추억을 배회할 듯 싶다. ‘대한민국에서 남자 되기’의 새로운 잉태가 임박했다는 뜻이다.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구할 것인가. 저출산, 섹스리스, 고령화 시대의 ‘또다른 남자 되기 프로젝트’는 어쩌면 자웅동체의 통합적인 신비를 간직한 자연과 양성애의 가능성으로 충만한 아이의 세계에서 반짝이는 교훈을 얻어야 할지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남자는 아버지들의 유전자와 어머니들의 유전자를 같이 갖고 있다. 구원은 늘 내부에 있다.

김종휘/문화평론가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