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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27 20:51 수정 : 2005.11.27 20:51

임범 문화생활부장

아침햇발

지난 7월말에 안전띠를 매지 않고 운전하다가 교통경찰에게 걸려 딱지를 떼였다. 집에서 가까운 수영장에 가는 길이었던 만큼 경찰관에게 사정을 해 볼 수도 있었지만 되레 딱지를 끊으시라고 큰소리를 치고 말았다. 왜 이런 일까지 국가가 간섭하느냐는, 일종의 시위인 셈이었다. 그래놓고는 건망증이 심해서 범칙금 3만원을 내지 않고 있다가 기한이 지나 금액이 4만5천원으로 50% 올랐다. 악법도 법이라는데 누구를 탓할까.

지난 10월19일치 <한겨레> 건강면에 실린 ‘전상일의 건강이야기’는 최근 매출이 급속하게 늘고 있는 ‘스포츠실용차’(SUV)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었다. 차체의 앞 부분이 높고 뭉툭한 이 차가 보행자를 치었을 때 보행자가 치명상을 입을 위험이 일반 승용차보다 갑절 넘게 높다는 것이었다. 전상일 박사는 한국이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짚었다. 노인들일수록 교통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고, 60살 이상 노인이 사고를 당했을 때 사망률이 젊은 사람보다 네 배나 높은 만큼 스포츠실용차에 대해 디자인 개조나 운전자 특별교육 등의 조처가 뒤따라야 한다고 촉구했다.

맞다! 자기 생명 지키라고 안전띠 매는 걸 강제할 게 아니라, 남의 생명을 앗아가기 쉬운 이런 차를 규제하는 법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에 스포츠실용차를 타고 운전을 스포츠처럼 즐기면서 달릴 산악도로나 구릉지대가 얼마나 있다고 이런 차를 너나없이 사들이는가. 게다가 자기 몸 보호한다고 차량 앞에 철봉을 줄줄 달아놓은, 그 차에 치인 사람이 더 크게 다칠 건 생각하지 않는 차들이 한두대인가. 그럼에도 스포츠실용차를 규제하기는커녕 휘발유 대체 연료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사용자에게 혜택을 주고 있지 않은가.

꼭 스프츠실용차를 규제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 차를 선호하는 것도 취향이고 개인의 자유다. 다만 남의 몸 다치게 할 가능성은 방치하면서 자기 몸 보호는 법으로 강제하는 나라, 좀 이상하지 않은가.

개인 생활에 국가가 간섭하는 법들이 자꾸만 많아지려고 한다. 안전띠까지는 교통사고 사망률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는 점을 십분 받아들여 양해한다고 치자. 가족에 충실할 것을 의무화하는 건강가족 기본법이 올해 초 발효되더니, 얼마 전 여당은 이혼을 쉽게 못하게 하는 ‘이혼절차에 관한 특례법안’을 국회에 냈다. 이혼을 하려면 법원에 이혼을 신청하고서 의무적으로 3개월 동안 기다리면서 상담을 받고, 그래도 하겠다면 하라는 법이다. 이 법안에 반대하는 시민·여성단체에서는 법안에 담긴, 이혼을 나쁘게만 보는 시각을 지적하거나 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것도 옳지만 기본적으로 이 법안은 헌법상의 행복 추구권, 인격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누구와 함께 사느냐 마느냐의 문제에 대해 국가 체제가 이런 식으로 개입하는 게 옳은가.

이혼이 늘어나면서 자녀 교육 등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걸 막아보자는 취지겠지만 법으로 풀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다. 우리 사회엔 유달리 캠페인이 많다. ‘바르게 살자’고 적힌 비석이 서울 시내 곳곳에 있다. 오죽하면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나왔던 “너나 잘 하세요”라는 대사가 불 번지듯 유행할까. 그것도 모자라 캠페인으로 할 일을 법으로 강제하려고 한다. 아이가 어른의 지적에 “너나 잘 하세요”라고 하는 건 문제지만, 개인을 아이 취급 하면서 국가가 어른 노릇 하려고 할 때 민주시민이라면 자존심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 너나 잘 하세요.”

임범 문화생활부장 is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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