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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29 18:15 수정 : 2005.11.29 18:15

권용립 경성대 교수·국제정치

세상읽기

한국 자이툰 부대의 감축 계획을 몰랐다는 미국과, 양국 간의 협의를 거쳤다는 국방부의 진실 게임은 미국 쪽에 사전 통보를 안 했다는 외교통상부의 해명으로 끝났다. 한국의 기권패다.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는 하필 아펙(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회의 기간에 감축 계획이 보도된 데 대해 유감 표명까지 했다. 그럴 만도 하다. 비록 부시 대통령의 몸은 쪽빛 두루마기를 입고 해운대 누리마루에 섰지만 관심은 온통 이라크 철군안을 둘러싼 연방의회의 표결 결과에 쏠려 있는 바로 그 때 이라크에 파병한 한국 군대의 감축 계획을 일방적으로 터뜨린 모양이 됐으니 말이다. 감축 계획보다는 그 보도의 절묘한(?) 시점에 더 주목하는 미국 언론의 논조도 이 사건을 한국의 미국 뒤통수 때리기로 부각하고 있다.

미국의 요청에 응하는 형식으로 이라크에 파병한 한국 정부로서는 병력 감축 문제 또한 공식적인 협의 절차를 제대로 밟아 뒷말이 없게 해야 했다. 더구나 외교 상식을 초월한 보도 시점 때문에 영국, 이탈리아, 폴란드, 일본 등 대부분의 이라크 주둔군이 감축 내지는 완전 철군까지 계획한 마당에 유독 한국만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떠벌린 셈이 되었다. 외교를 내수용 생색내기에나 이용한다는 조롱만 자초할 이런 미숙한 일처리 방식은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12월15일의 이라크 총선 이후 시작될 이라크 주둔 외국 군대의 철수 러시에 발맞춘 ‘감축 아닌 철군’을 한국은 과연 준비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당장 내년이면 이라크 새 정부가 철군 문제의 변수로 등장한다. 외국 군대의 주둔은 내년에 수립될 이라크 새 정부로서는 중대한 주권 침해 사안이다. 이미 시아파, 쿠르드족, 또 시아파의 임시정부에 저항해온 수니파 대표단은 11월21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이라크 주둔 외국군의 철수 일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라고 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이라크 새 정부를 구성할 정치세력이 함께 모인 이번 회동은 내년 2월의 추후 정치협상을 위한 예비 모임이다. 따라서 외국 군대의 조속한 철군은 내년 이라크 정치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를 것이다.

미국 또한 철군이 대세다. 우선 바깥 문제에 대한 간섭을 반대하는 여론이 급상승 추세다. 내년에 활동을 개시할 차기 미국 대선 예비주자들부터 ‘중동 민주화’의 꿈을 접고 철군 이후의 이라크에 관한 현실성 있는 대안을 내놓아야 할 판이다. 또 연방의회에서는 존 머서 민주당 하원의원이 제출한 ‘이라크 주둔 미군 즉각 철수안’을 둘러싼 논쟁까지 벌어졌다. 비록 머서의 철군안은 압도적 표차로 부결되었지만, 표결 결과를 철군 자체에 대한 반대로 봐서는 안 된다. 이미 워싱턴 정가는 이라크가 ‘수렁’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다만 ‘즉각적 완전 철군’이 이라크의 치안을 더욱 악화시키고 테러에 대한 미국의 항복으로 비칠 우려 때문에 반대한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거듭된 백악관의 조기 철군 반대 의사 표명에도 불구하고 미군 철수는 시간문제가 되고 있다.

내년까지 이라크 주둔 미군을 지금의 15만에서 10만 이하로 줄인다는 미 국방부의 계획은 이런 정황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이라크 군과 경찰의 자립 가능성이 앞으로도 희박한 현실에서 대규모 감축 계획이 나온 배경은 국방부의 고민인 병력 부족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의 정치풍향계가 철군 쪽으로 돌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자이툰 부대의 앞날은 이라크 변수와 미국 변수를 한국 정부가 어떻게 예측하고 파도타기 하느냐에 달렸다. 이제는 감축이 문제가 아니다. 철군의 국제정치가 이미 시작되었다.

권용립/경성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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