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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1 18:28 수정 : 2005.12.01 18:28

유레카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남서쪽으로 120km쯤 떨어진 곳엔 2000여년 역사의 고풍스런 도시 모스타르가 있다. 남북으로 네트레바강이 흐르고, 스타리 모스트(모스타리, 오래된 다리)가 강의 동서를 잇는다. 도시 이름은 길이 28.6m, 높이 19.의 단일 교각으로 이뤄진 아치형의 이 다리에서 유래했다. 그 아름다움과 오랜 역사는 유네스코로 하여금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케 했다. 그러나 모스타리가 증언하는 도시의 역사는 피로 얼룩져 있다.

네트레바강은 서기 285년 로마가 동서로 분열할 때 국경을 이뤘다. 로마 카톨릭과 정교, 서로마와 동로마 제국이 각축하는 전선이었다. 15세기 오스만터키가 발칸반도를 지배하면서 이슬람이 가세했다. 다행히도 오스만의 개방적 종교 정책은 이슬람·정교·가톨릭의 공존과, 세르비아계·크로아티아계 그리고 개종한 무슬림이 상생하도록 했다. 모스타르는 문화적 용광로가 됐다. 소통과 융합의 한가운데는 1556년 술탄 슐레이만의 명에 따라 미말 하이레틴이 세운 모스타리가 있었다.

공존의 구조는 민족주의 광풍과 함께 순식간에 무너졌다. 대세르비아를 앞세운 세르비아 공화국은 1992년 20세기 최악의 인종청소가 자행된 보스니아 내전을 일으킨다. 무슬림은 세르비아 민병대가 퇴각하자, 이번엔 대크로아티아를 앞세운 크로아티아계 손에 인종청소를 당한다. 모스타리는 이때 크로아티아계의 포격으로 1993년 11월 붕괴됐다. 내전 때 3000여명이 학살되고 1500여명이 실종됐으며, 시민의 절반이 도시를 떠났다.

지난달 26일 모스타르의 무슬림 밀집지역과 크로아티아계 밀집지역 사이엔 리샤오룽(이소룡) 동상이 세워졌다. 민족간 화해와 연대를 모색하던 시민들은 생전에 인종차별과 불의에 맞섰던 그를 상징 인물로 선택했다고 한다. 모스타리는 지난해 유엔과 터키 등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복원됐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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