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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2 18:20 수정 : 2005.12.02 18:20

정영무 경제부장

편집국에서

사상 최고치의 주가, 하루 10억달러를 넘는 수출. 최근 한국 경제의 고무적인 성적표다.

8년 전 이맘때의 ‘난파의 공포’는 이미 역사가 됐다. 1997년 오늘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날이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내년에는 성장률이 올해보다 높아져 5%를 웃돌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한겨레〉가 기억하기 싫은 아이엠에프 사태를 끄집어낸 것은 그 후유증이 심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낙관적인 지표 경기 이면에 성장 잠재력은 떨어지고, 금융산업은 속병을 앓고, 사회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이런 증세는 우리 체질 탓도 있었지만 국제통화기금의 울며 겨자 먹기식 처방으로 더욱 고질화됐다.

이와 함께 한배를 탔다는 일체감, 평생 고용을 기반으로 한 직원들의 애사심과 노사간의 신뢰, 은행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한 높은 저축률 같은 ‘무형의 자산’이 상당부분 사라졌다. 사회적 합의에 바탕한 근원 처방이 필요하다.

특히 기업가 정신이 한풀 꺾인 점은 안타깝다. 기업가 정신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정신, 그리고 사회적 책임의식일 터이다.

환란에 일부 기업인들의 책임이 있지만, 기업인들의 노력으로 우리 경제가 이만큼 살아났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경영자들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과 함께 글로벌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 결과 적지 않은 기업들이 사상 최고의 이익을 내고, 수출을 크게 늘리고 있다. 그렇지만 너나없이 단기 실적과 수익에만 급급한 실정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순이익은 100%가 늘었지만 상장기업들의 고용은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상장기업들은 66조원의 엄청난 현금을 가졌지만, 이 돈은 국내에 투자되지 않고 빚을 갚거나 국외에 투자하거나 제2금융권에 예금하는 형태로 묶어뒀다.

이것이 민생의 어려움을 말해준다. 경제 성장률이 얼마냐, 기업이 얼마의 이익을 내고 있느냐와는 관계가 없다. 구조개혁의 성과가 일부 기업에 국한되고,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확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경제학자는 “경제는 극도로 효율화하고 있으나 사회는 분열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지난해 기업부문과 가계부문으로 나눠 가처분 소득의 증가율을 따져본바, 기업 쪽의 가처분 소득 증가율은 41%로 급성장한 반면 가계부문의 가처분 소득은 0.9%밖에 늘지 않았다. 국가경제 전체가 4.6% 늘었는데, 가계는 1%도 안 늘고 기업은 41%나 늘었다면 어떻게 된 것일까?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이에 대해 가계는 움츠러드는 반면, 소득이 늘어나는 기업은 보통이 아니라 사상 최고의 이익을 낼 정도로 커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회사와 기업들의 수익성 개선은 구조조정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부와 가계 부문의 희생이 뒷받침됐다. 정부는 공적자금을 대거 쏟아붓고 내수 진작을 위해 저금리에다 신용카드 장려정책을 폈다. 기업 부채 축소는 정부 부채와 가계 부채 증가라는 대가를 지급한 것이다. 가계 빚은 꾸준히 늘어 최근 500조원을 넘어섰다.

어려울 때 구조조정을 한 기업들은 형편이 나아졌으면 투자와 고용을 활발히 늘려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고 주변을 돌보지 않는 것은 기업가의 정신이 아니다. 더구나 기업들은 사회에 큰 빚을 졌다.

기업가 정신은 원래 우리 기업인들에게 내재된 유전자다. 그것이 제대로 발현되기를 기대한다.

정영무 경제부장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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